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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가족은 흔하다

내 아들, 내 가족

나는 너무나 평범한 가족을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집 안에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는 늘 한 가족이었고, 그걸 별로 의심해본 적이 없다. 소위 말하는 정상가족이지만, 아무런 문제 없는 가족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족에 대한 걱정없이 많은 세월을 살 수 있었다.

어릴 때에는 몰랐다. 가족들과 곧 헤어져 내 삶을 살게 될거라는 것을. 누가 설명해줘도 모르지 않았을까.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나의 하루는 공기 같은 가족을 바탕으로 누릴 수 있었다. 가족이 없는 일상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2박 3일 수학여행을 간다고 해도, 늘 돌아갈 곳은 가족이 있는 집이었다. 누나가 결혼하기 전까지 집에서 같이 살아서 그나마 우리 다섯 사람이 함께 한 시간이 길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대학교를 가게 되면서 나는 가족이라는 궤도에서 벗어나 나의 것을 찾으려 노력하게 된다. 그때도 몰랐다. 일상에서 우리 가족을 보는 게 쉽지 않은 일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음력 생일을 지낸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음력생일이라니. 어떤 서비스에 가입하던 내 생일을 묻는다. 그리고 양력 생일날이 되면 문자메시지가 쏟아진다. “고객님의 생일을 축하드리면, 생일 축하쿠폰 ...” 음력 생일이 되면 가족 혹은 가족 같은 사람에게서만 메시지가 온다. 애써 달력에 내 생일을 써두고 기억해주는 사람.

우리 엄마와 아빠로부터 시작되는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24년 정도다. 임용에 합격하고도 나는 부산에서 창원까지 출퇴근을 했고, 엄마는 내 아침을 차려줬다. 그 덕분에 엄마와 아빠와의 별거가 유예될 수 있었다. 세 살 아래 동생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게 되면서 사실상 우리 가족은 한 자리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그런 거리에 있지 않았다.

그렇게 흔한 가족인데, 이제 서로의 생일날이 되어야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 각자의 삶을 이고 지고 가느라 이제는 ‘가족’하면 나로부터 시작된 가족을 생각하게 된다. 내 가족하면 나는 나와 아내, 아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엄마와 아빠는 늘 잘 지내고 있는 걸까?

코로나 덕분에 만나지 못하는 이유가 더 늘어났고, ‘올 해에는 한 번 봐야지’ 하는 말도 사라지고, ‘코로나가 끝나면 보자’ 고 미뤄두기만 한다. 코로나 끝나면 보자고 한 약속들을 정말 코로나가 끝나고 풀어놓으면 나는 분명 매우 바빠질 것 같다. 대학생이 되면 할 일을 써두며 허벅지를 찌르던 고등학생 때처럼, 이제는 코로나가 끝나면 할 일을 써두며 카톡으로만 안부를 전한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게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마치 내가 원하고 노력하기만 하면, 내가 바라는 세상이 펼쳐질 수 있을 것처럼 꿈꿀 수 있다. 하지만, 미래에 내가 후회하게 될 것을 미리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어느 정도 후회하게 될 수 밖에 없다. 함께 지낸 세월이 짧은 데도 나를 좋아해주고,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데 감사한다. 가족이란, 서로 무엇을 해주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그저 매일을 살다가 가끔 - 대신 절대 잊지 않고 - 서로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아닐까.

코로나가 정말 조금만 주춤하면, 서울로 인천으로 부산으로 내 가족을 보러 더 바삐 다니고 싶다. 우리에겐 사실 별로 남은 시간이 없다. 만나지 못하는 동안의 시간도 결국 우리 일생의 일부다. 유한한 우리 삶에서 그 일부가 덧없이 흘러가 버릴 수도 있다. 하고 출발을 알리는 소리만 나면 튀어나갈 것 같은 자세로 서 있어야, 뛰어나갈 수 있다.

가족은 흔했다. 저녁마다 볼 수 있었고, 아침마다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렇지 않은 나이를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