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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10대가 겁내는 쥐라기 공원과 40대가 겁내는 시간 아빠, 아까 쥐라기 공원 봐서 무서워서 혼자 못 자겠어. 아들은 오랜만에 내 방으로 왔다. 그래, 옆에서 자. 아들은 동생 앞에서는 세상 무서운 게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어둡고, 총이 많이 나오고 피가 나오는 건 무서워한다. 그렇다고 그런 영화들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은 영화 속 이야기라 하더라도, 실제 하는 것만큼이나 무섭게 느껴질 수 있다. 아들은 자기 인형을 잔뜩 가지고 와서 내 옆자리에 누웠다. 귀여워. 아마도 오늘 잠자리는 불편하겠구먼… 딸은 어릴 때부터 만화 영화 속에서라도 무언가가 쫓아오고, 누군가가 쫓기는 장면을 무서워 했다. 쫓고 쫓기는 데 무서워하지 않는 건 톰과 제리 밖에 없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면서도 무섭다고 했다. 무엇에 대해서 왜 겁을 내는 지 이유가 있을.. 더보기
소통가능한 식물과 불통가능한 헐크 애초 되돌려 받을 마음이 없는 관계란 얼마나 좋은가 싶다. 이승희 산문 준 것은 잊고 받은 것은 기억해야지 늘 애쓴다. 하지만, 못난 인간이라 가끔 준 것을 기억하고 받은 것은 기억에서 희미해질 때가 있다. 그러다가 책에서 저 문장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얼마 전부터 나를 노려보며 나의 인사를 무시하는 학생 한 명이 떠올랐다. 교사의 역할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교육이 무엇이냐에 대한 정의보다 더 많은 답이 가능할 것이다. 교사마다 다른 답을 가지고 있고, 학생마다 다른 기대를 할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교사의 역할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도 어렵다. 우선 나라가 정하는대로 교과 수업을 하고, 성적을 내고, 대입을 위해서 생활기록부를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 이건 최소한. 최대한으로 하자면, 그렇다, 끝이 .. 더보기
가을 일기, 하늘, 봉지커피, 영어말하기 대회 심사, 자출 아침에 출근하면, 가끔 나보다 더 일찍 와 있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 어떤 이유로 먼저 와 있는 것일까? 대개는 교실불은 끈채로, 에어컨은 켠채로 휴대폰을 하고 있다. 아니면, 대범(?)하게 교실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낮이 되어도 교실은 밝아지지 않는다. 햇볕이 싫은 건지, 어두운 게 익숙한 건지, 대개 운동장쪽 블라인드는 내려져 있고, 전등으로만 불을 밝히고 있다. 전등을 모두 켜면 밝기는 한데, 해가 비추는 바깥 만큼 밝고 환하지 않다. 에어컨이 풍기는 그 약간 습한 느낌, 사람의 몸을 파고 드는 그 차가움에 학생들은 비실 비실 졸기 시작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햇볕이 났다. 꿉꿉한 이불이 있으면 볕에 널면 좋을텐데, 나는 잠시 긴 장마와 잦은 비에 눅눅한 나를 말리러 나간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더보기
코로나 시대, 더욱 방과후 수업을 열심히 해야합죠. 코로나 시대, 더욱 방과후 수업을 열심히 해야합죠. 학교에는 수많은 공문이 온다. 그렇다고 모든 교사가 모든 공문을 읽지는 않는다. 공람이라는 항목이 있다. 학교로 온 수많은 공문은 예전에는 대개 교감선생님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서 각 업무로 지정되었다. 마치 폴더와 같은 온라인 상의 문서함이 있어서, 내 업무에 해당하는 공문은 내가 접수하여야 한다. 최근에는 교무행정전담주무관이 있는 경우가 많다. 아주 오래전에도 교무실에서 갖은 잡무를 하는 분이 있기는 했다. 그때와 지금의 주무관은 비슷한 듯하지만, 제법 많이 다르다. 아무튼 주무관이 학교의 업무분장을 보고 공문을 배당한다. 그리고 공문을 접수한 교사는 모든 교사가 읽고 앍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공문은 공람을 시킬 수 있다. 그러면, 교사는 교무행정.. 더보기
초등4학년 아들에게 필요한 아빠 나라는 사람은 참으로 보통 사람이라, 세상을 먼저 내가 기억하는 기준으로 바라본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많이 그렇다. 일단 내가 자라면서 아버지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 지를 더듬어 아들을 대하고 있다. 그리고 아들이 4학년이 되면서 나는 아들과의 관계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말문이 트이기 전까지의 좋은 기억은 오래 간다 내 첫 조카는 이제 고1이다. 누나 내외가 대구로 갔다가 인천으로 가면서 나는 조카를 자주 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조카가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은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나는 결혼 전이었고 시간이 많았다. 틈만 나면 조카를 보러 갔었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미끄럼틀에 올려주고 내려오는 걸 받는 것이었다. 걷고 말하게 되었을 때도 조카가 하자는 대로 놀아주면 .. 더보기
마스크 너머 보기 오늘 오전에는 어제 학생들은 받고 나서 두고 간 장미들을 급히 구한 꿀병에 꽂았습니다. 어제 학생들에게 장미를 나눠주었는데, 굳이 집에까지 안 가지고 가고 싶은 사람도 있겠다고 싶었고 그런 사람은 두고 가면 모아서 교실에 두겠다고 말했습니다. 들고 간 학생들도 있고 두고 간 학생도 있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버리기도 했다는데, 우리 반 학생들은 적어도 버리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제가 개학이니 오늘이 실제로 첫 등교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몇 명은 등교 시간을 조금 넘겨서 등교하기도 했지만, 일찍 와서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지난해부터 생각해온 던 것 중 하나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합니다. 때마침 어제 우리 반 학생들 중 몇 명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NEIS에 .. 더보기
맥주 한 캔을 위해 쓰는 장황한 이야기 딸을 재우고 나서, 블로그 글을 하나 쓰고 나서 맥주를 마시기로 마음먹었다. 딸이 잠들기를 기다리는 데 시간이 꽤 지나버렸고, 바로 마실 수는 없고, 나는 이 글을 마쳐야 맥주를 마실 수가 있다. 맥주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될까. 우선, 이 맥주를 선물해 주신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술에도 ‘맛’이 있다는 것을 대학생이 되기 전에는 몰랐다. 귀밝이술 말고 술을 ‘제법’ 마셔본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인 것 같다. 사물놀이 동아리였는데, 공연이 끝나고 선배들이 구포시장 통닭 골목에서 소주와 통닭을 사줬다. 아, 그렇다고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아니다. 그저 어른도 없이 술을 여러 병 시켜놓고 마신 게 처음이라 굉장히 강렬하게 기억해서 그렇다. 술은 당연히 ‘저렴한’ 소주였고, 나는 한 잔을 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