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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도망가기 좋은 책으로 도망가기 인기있는 책은 역시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읽어야 제 맛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구석은 먼지가 날리기 마련이고, 그 먼지가 가라앉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사람 많은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사람들이 물러간 자리여야 찾아가서 앉는다. 일이 많은데, 잘 하지는 못 해서, 나는 한 주 내내 책 속으로 도망갈 생각을 했다. 다음 날을 위해 일찍 잠들어서, 아이폰은 나에게 잠자는 시간을 잘 지켰다며 칭찬을 했다. 정말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나 생각하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1분, 신호를 기다리는 30초도 책을 읽을 수는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한다, 책값이 비싸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저 책이 해야 할 일의 순위에서 자꾸 .. 더보기
티타가 끓여내는 스튜 같은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씀, 권미선 옮김. 민음사(2004) 사람의 몸에는 불의 씨앗이 있다. 한 번에 너무 활활 타버리면 주변의 모든 걸 태울 수 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마치 요리책 같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은 모두 여성이다. 음식을 만드는 절차에 대한 묘사는 대단할 것이 없지만, 사건과 사건 사이, 쉼과 쉼 사이에 끼어드는 조리의 현장은 이 작품 전체에 풍미를 더한다. 이 책을 고를 때, 책 제목이 익숙해서 들었다. 그리고 처음 몇 페이지를 읽는데, 빠져 들 수밖에 없어서 골라서 집으로 왔다. 일터에서는 쉬는 시간 따위는 없기 때문에, 잠들기 전 집에서만 읽을 수 있었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는 티타를 둘러싼 사건에 마음을 졸이고, 그녀가 내놓는 음식을 상상했다. 좋은.. 더보기
제5도살장 : 드레스덴 폭격과 시간 여행 제5도살장 : 드레스덴 폭격과 시간 여행 외계인에게 납치되고, 시간에서 자유로워진 채로 자신의 결혼식으로, 자신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는 시점으로, 드레스덴의 제5도살장에서 폭격을 목격하던 순간으로 종횡무진 이동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이 책은 어디서 보고 읽어야 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늘 한 책이 다른 책을 소개하고는 하는데, 일단 알라딘 장바구니에 넣고 나면 잊는다. (알라딘 장바구니는 장바구니로만 쓴다. 주문은 진주문고에 한다.) 아무튼 이 책을 샀다. 제5도살장은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가던 1945년 2월 13일부터 3일간 4000톤 정도의 폭탄을 드레스덴에 투하한 작전이다. 도심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25,000정도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 더보기
말하지 않기로 선택했지만, 결국 말하기로 선택해주는 아이의 이야기 ‘목소리를 삼킨 아이’ - 파리누쉬 사니이 목이 아프다. 가끔 열심히 수업을 하느라 떠들고 나면, 머지 않아 내 목소리도 갈라지고 못 쓰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될 때가 있다. 마스크를 쓰는 요즘은 더 그렇다. 입모양을 보여줄 수 없으니, 전달이 잘 안될 때가 많다. 말을 잃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내가 말을 하지 않게 되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운명 따위는 믿지 않지만, 책이 내 눈에 들어오는 시기는 분명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늘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책들은 곁에 두어야 한다. 뒤적이고 뒤적이다... ‘아, 이 책 산 지 오래되었는데, 이제는 읽어봐야지’ 생각하고 잡았을 때, 책이 나를 책 속으로 바짝 끌어당겨 책에 푹 빠지게 되는 때가 있다. 양서를 고르는 일도 중요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