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책모임

11월 모임: '종의 기원을 읽다'(양자오)

2023.11.17. 19:00~
그라운드헤븐(초전동)
5명

그라운드헤븐 크리스마스 트리

커피숍에는 벌써 크리스마스다.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끌기 위한 장삿속에서 비롯된 꾐의 수단일 뿐이겠지만 보고 있으면 좋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모임이 끝나면 바로 모임의 후기를 쓰고는 했는데, 10시 30분에는 잠을 자야 하는 나는 그날을 넘겨 버렸다. 주말은 주말이라 게으름을 피우고 이렇게 벌써 수요일이 되어 버렸다. 더 지체하느니 조금이라도 쓰고 가는 게 좋겠다.

소개팅 주선자 같은 양자오 선생

바로 다윈을 읽어야 하지만, 양자오 선생에 의지하기로 한다. 나는 양자오 선생은 대만사람으로 많은 고전을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의할 만큼 지식의 범위가 넓다. 집에 이 분 책이 몇 권인지 모르겠지만 우선 최근에 '자기 자신에게 성실한 사람'(부제 까뮈 읽는 법)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기대하는 바가 컸다. 어차피 다윈과 나는 너무나 오랜 시간과 낯선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으니 그 사이를 연결해 줄 사람이 필요하고, 양자오 선생의 이 책은 딱 좋은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모임을 마쳤을 때는, 이 책을 펴두고 종의 기원을 같이 읽어가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두 권을 함께 읽기가 쉽지는 않다) 마치 커플 매칭에 자질이 뛰어난 소개팅 주선자처럼 양자오 선생은 우리 모임 사람들에게 '종의 기원'의 매력을 한껏 보여줬다.

고전일수록 읽지 않는

고전에 대한 책이 많아서 결국 사람들은 고전을 안 읽게 된다. 고전을 직접 읽고 그 어려움을 맛보고 재미를 찾기보다는 고전에 대한 책을 읽어 쉽게 고전을 이해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전의 축약복은 고전이 아니다. 100개의 그림 퍼즐 중 10개를 맞추고 나서 퍼즐을 다 맞췄다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견해가 들어간 축약복은 누군가가 해석한 전체 작품의 일부분일 뿐이다.

다윈과 다윈주의는 다르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다윈주의를 알지 못했다. 다윈과 다윈주의가 다르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다윈주의는 다윈의 친구 헉슬리 덕분에 유명해졌다. 그리고 생물학을 뛰어넘어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게 된다. 다윈이 새롭게 생각해 낸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은 같은 종 안에서의 생존 경쟁이 벌어지고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가 더 번성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다윈주의는 고등한 개체는 우월하고, 그 개체는 하등하고 열등한 개체 혹은 대상을 압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았다.

다윈주의가 전파되면서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종교가 세계의 질서이던 사회에서 자연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신이 만든 것이라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윈주의 덕분에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은 없으며 고등한 인간은 자연을 착취해도 되는 것이다. 다른 동물을 모두 숲에서 몰아내어도 이는 적자생존의 실현일 뿐이었다.

다윈의 대단한 점

다윈은 린넨의 분류법을 벗어나 생각한 덕분에 ‘목적이 분명한 진화’라는 틀에서 벗어났고 개체를 중심으로 진화를 밝혀 나갈 수 있었다. 사람들이 섣불리 같은 종이라 생각하는 동물들 사이에도 다양한 차이가 있고 돌연변이의 발생이 진화의 중요한 도약이 된다면 하나의 개체는 같은 종내의 다른 개체로부터 구분된다. 목적이 있는 진화, 본질에 근거한 분류법이라는 생각의 틀을 다윈은 어떻게 뛰어넘었을까.

가자 고전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잠깐 언급되는 동성애에 대해서도 열띤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내년 독서 모임(12월 책은 이미 정해뒀으므로)은 어떻게 진행할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결국에는 고전 도서 목록을 만들어 읽어 나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합의에 이르렀다. 먼북소리 모임을 세 명이서 2017년에 시작했다. 햇수로 7년이다. 이제 드디어 고전으로 나아갈 준비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