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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지는 가을에 빼빼로

지는 가을에 빼빼로

다음주 월요일부터 원격수업이다. 월, 화, 수요일을 원격으로 전환하면서 수능감독관이나 수험생들의 감염을 막자는 의도이리라. 감염 확산을 막을 생각이라면 1주일 정도도 가능하겠지만,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1, 2학년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래서 오늘이 수능 '전' 날이 되어 버렸다. 여느때처럼 바쁜 하루를 보내고 퇴근을 한다. 오늘 퇴근길에는 가보지 못했던 길을 좀 갔다가 왔다.

제이미스 오로라 영천강을 옆에 끼고 평소 가지 않는 길을 간다. 후두둑. 나는 은행잎 떨어지는 소리가 좋다. 그렇게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떨어지는 은행잎을 한없이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고 싶다. 은행잎이 마구 떨어질 때는 마치 서로 손을 잡고 자유낙하하는 것처럼 하나가 떨어지고, 뒤어 둘, 셋, 열, 스물.. 이렇게 떨어진다. 내일은 비가 올 수도 있으니, 바람에 떨어지는 단풍을 보는 건 오늘이 절정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노란 빛, 붉은 빛을 더 눈에 담는다. 해질녘 약간의 비포장 도로를 따라 가니 마음이 새롭다. 잘 조성된 무덤이 보여서 깜짝 놀랐는데, 길이 이어지지 않아서 다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이른 새벽 자전거를 타고 와서 커피 한 잔하면 좋겠다. 새벽커피 모임을 열지 못한지가 제법 오래 되었다. 내년에는 가능할까. 철새 오리 조금 돌다가 결국 늘 다니는 퇴근길이다. 한 일주일 전부터 오리들의 모습이 늘었다. 겨울을 남강에서 보내려고 새들이 몰려 든다. 남강은 얕아서 물 아래 풀이 다 보인다. 오리들은 잠역질을 하며, 남강에 적응 중이다. 조심히 방해하지 않고 사진으로 찍어둔다. 빼빼로 퇴근하기 직전, 학생이 찾아와서 빼빼로를 준다. 이렇게 메모가 담긴 빼빼로는 처음인 것 같은데.. 아니, 처음이 아니더라도 제법 오랜만 인 것 같다. '수업이 좋다'라고 써줘서 더 고맙다. 팔로 하트를 만들며 내 마음을 달래 주었다. 고마워.

기분 좋게 해주는 일이나 선물을 블로그 비공개 글로 담아둔다는 사람의 글을 봤다. 좋은 생각이다. 내가 잘하고 있나 의심이 들 때, 나를 의심없이 믿어주는 사람들의 응원을 다시 보는 건 현명한 방법이다. 이 빼빼로 사진도 모아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