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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달 밝은 날 저녁 식사 후 퇴근 길

남매식당 로제파스타 2학기에 복직해서 우리 부서에서 같이 일하게 된 선생님이 있는데, 환영회 한번도 하지 못 했다. 큰 이유는 내가 일하느라 전혀 여유를 가지지 못해서. 1학기 때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같은 부서 선생님끼리 앉아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여유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마감되지 않은 일 때문에 쉬지도, 일하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하나의 일이 마감되어도, 큰 틀에서 보면 마감이 안되기도 한다.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 지 스스로 확인 조차 할 수가 없다.

모른다는 사실은 겁날 게 없다. 하지만,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닐까 상상하면 불안하다.

제이미스 오로라 가로등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학교로 돌아가서 일을 할 생각이었다. 아침에 나오면서 아내에게 "저녁도 밖에서 먹는 김에 좀 늦게까지 일하다 올께"라고 했다. 하지만, 저녁을 먹고 있을 때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언제와? 딸이 빼빼로 먹고 싶데. 사다줄 수 있어?" 아내가 '언제와'라고 물으면, 그게 늘 '빨리와'로 들린다. 그리고 딸이 빼빼로를 먹고 싶다니 집으로 갈 충분한 이유가 된다.

차분히 집으로 오는 길, 달이 밝고 크다. 그래서 자전거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준다. 어제는 떼어 놓았던 리어랙을 다시 달았다. 무엇이든 더 실을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자전거를 타는 시간만큼은 자유롭고 평화롭다. 자전거를 타는 시간이 편도 한 시간 정도 되면 딱 좋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그렇다고 퇴근하고 돌아돌아서 집으로 올 생각은 하지 않게 되니 어쩐다. 천천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거리를 늘이지 못해도 시간을 늘인다.

빼빼로데이 자전거 앞 바구니에는 빼빼로 두 세트를 담는다. 뒤에는 우유를 담았다. 차곡차곡 집에 가서 가족들을 먹일 무언가를 싣고 가는 일이 즐겁다. 퇴근하는 아빠가 손에 들고 들어오던 검은 비닐봉지가 생각난다. 붕어방이 신문지에 쌓여 비닐봉지에 들어 있기도 했고, 통으로 튀긴 닭이 신문지에 쌓여 비닐봉지에 들어 있기도 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린다는 점이, 나를 집으로 끌어 들인다. 아무도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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