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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저 우주를 넘어, 라이트이어

 

라이트이어

일요일에는 뭘 할까. 아들과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누군가 쫓고 쫓기기만 해도 무섭다고 하는 딸은 집에 두고 갈 수밖에 없었다. 진주 혁신 CGV 안에 들어섰다. 딱 세 명의 직원이 눈에 들어왔는데, 티켓팅을 돕고, 밀려드는 팝콘과 음료 주문을 처리하는데, 모두 너무너무 정신없어 보였다. 상연관에서 표를 확인하는 직원은 한 명. 상영관 복도도 너무 온도가 낮았고, 영화관 안의 온도도 낮았다. 바람막이를 챙겨가지 않았다면 추웠을 것 같다.

토이스토리에서의 라이트이어를 생각하며 별 생각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10시 영화는 더빙판만 있어서 그걸 봤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보러 온 경우가(우리처럼) 많았지만, 별로 시끄럽지 않았다. 그래도 12세 이상 관람가인 영화다. 유치원생들에게까지 재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영화를 보는데, 이야기의 큰 축을 차지하는 하이퍼 스피드는 토이스토리에서 이미 멀어졌다. 차라리, 인터스텔라에 가까운 영화다. 그래서 좋았다랄까. 토이스토리에서 라이트이어는 그저 조연일 뿐이었다. 허세에 가득 찬 임무가 없는 우주 대원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제대로 자기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시간을 넘나 든다는 영화의 설정까지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는 주인에게서 큰 사랑을 받는 장난감들의 이야기*가 아니고, 그래서 라이트이어라는 인물에 대해서 집중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자기의 실수로부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혼자힘으로 자신의 과오를 되돌리려고 하는 인물이다. 4분짜리 실험 비행을 갔다 올 때마다 가장 좋아하는 동료가 몇 연식 늙어간다. 그런 충격을 딛고도 그는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다. 모두가 새로운 별에 적응하고 인생을 만들어 나갈 때, 그만 지구에 사로잡혀 있다. 새로운 별에 새로운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게 되고, 그리고 그 임무에서 자유롭게 된다.

이러니, 차라리 이 영화는 인터스텔라의 애니메이션 판에 가깝지 않은가.

영화를 보러 가기 전, 뉴스 검색에서 중국, 인도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라이트이어 장면 중 일부를 지울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동성의 부부간에 뽀뽀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라이트이어의 가장 소중한 동료인 호손*의 이야기이라는 점에서 *동성인 호손 부부의 장면을 쉽게 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 괜히 그 기사를 보고 가서 그런지, 나는 아들이 그 장면을 보고 내게 질문을 하면 어쩌나 생각하기는 했다. 다행히(?) 아들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뭐라 답할 게 있겠나. 이제 반드시 남자와 여자만 결혼하는 것이 아니고, 같은 성을 가진 사람도 부부가 될 수가 있고, 법적으로 그게 가능한 나라들도 있다.. 고 설명하지 않을까. 우리 시대의 정상가족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하고,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누구도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우리 다음 세대에게 안내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오늘 영화를 더빙으로 보았는데, 차라리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우들의 연기는 충분히 좋았고, 내 눈은 화면을 모두 구석구석 쳐다볼 수 있었다. 자막이 없는 영화가 더 좋다. 자막을 좇으면서 화면도 모두 감상하기란 어렵다. 더빙한 영화는 그렇지 않은 영화에서 비롯된 또 다른 저작물이고, 그것대로 뛰어난 점도 있지 않을까.

아직 안 보신 분 보시길. 토이스토리처럼 눈물 나게 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좋고 재미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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