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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손목이라는 마음

손목

아마도 어제부터였던 것 같다. 왼쪽 손목이 아프다. 물건을 잃어버리고, 어디에서 잃어버린 것인지 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손목에 나타난 통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찾아보려고 마음 속을 뒤져 본다. 특별히 무거운 것을 든 적이 없고, 어디간에 부딪힌 적도 없다. 떠오르는 이유는 새로산 기계식키보드 뿐이다. 보통의 키보드보다 높이가 높아서 손을 약간 들듯이 한 채로 타이핑을 해야 한다. 정확히 그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생각나는 이유는 그것 하나 뿐이다.

근육이나 관절이 아프면 금세 알 수 있다. 자전거를 탈 때, 안장이 적정한 정도보다 낮으면 오르막을 오르면 바로 무릎에 무리가 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랜만에 달리기를 하고 나면, 더 안 좋은 발목이 아플 때가 있다. 둘째를 자주 안아 줄 때는 오른쪽 손목이 심하게 아픈 적이 있었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지 못할 정도였다. 손을 흔들려고 할 때마다 날 세운 자로 누군가 손목을 때리는 것 같았다.

관절이나 근육의 아픔을 아는 것처럼, 우리가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에 민감하다면 인간은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지 않을까? 왜 신은 혹은 진화는 인간을 그런 식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췌장이나 십이지장이 몸에서 일어나는 통증에 대한 신호를 우리 뇌에 전달하지 못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잘못 변형된 세포가 있는데, 그걸 다른 정상세포와 구분 못하는 것 일 수 있다. 하지만, 이때 그 구분의 주체는 누가 되나? 세포 하나 하나의 자극이 뇌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 정보를 모두 처리할 만큼 뇌의 용량이 충분하지 않은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간이 장기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면, 지금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형태의 자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마치 정말 죽을 때까지 숨을 참는다든지... 일부러 어떠한 것도 소화시키지 않는다든지...

인간은 약해지고 있다. 우리는 언제 수렵생활을 했느냐 싶을 정도로 이제는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된다. 뛰는 일은 더더욱 없다. 무엇을 먹어도 되는지와 그렇지 않은 지는 포장지에 적혀 있는 유통기한에만 의지한다.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먹어도 되는 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능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약해지는 대신 우리가 얻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모르겠다.

몸의 통증에 대해서는 주저없이 외부(약, 의사, 병원, 기계)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마음의 통증에 대해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마음이라는 영역에 대해서 과학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 지 최신의 경향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개인에게 있어서 아직도 마음은 미지의 영역이다. 단, 마음의 일은 몸의 일이기도 해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통증이든 상대에게 영향을 미친다. 나는 손목의 통증을 보면서, 껍질로 숨는 소라게처럼, 오늘은 집에서 되도록 조용히 조심스레 시간을 보낸다.

꽤 오래 전에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 아플 때는 좀 안 먹다가 괜찮은 것 같으면 다시 음식을 먹었다는 내 말을 듣고, 의사는 "상처가 났는데, 거기 계속 만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상처에 자극이 안되게 해야지요. 안 아플 때처럼 먹으면 안됩니다."

며칠 손목을 쓰지 않고, 그래서 손목이 나아지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또 마음 쓰이는 곳이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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