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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몸쓰기의 기술 전수 : 간지럼 참기

내 딸 내 사랑

딸은 눈을 위로 뜨더니 쌍꺼풀을 만들어 엄마를 웃긴다. 나도 질세라 옆으로 가서 눈을 위로 희번덕 뜨고 쌍꺼풀을 만들어 본다. 딸의 쌍꺼풀은 상큼하고 나의 그것은 기름지다. 이제 딸은 콧방울 양 옆으로 주름을 잡는다. 이건 당최 나도 따라 할 수 없다. 나는 혀를 말아서 딸에게 보여주며 따라 해 보라고 한다. 이번에는 혀를 옆으로 세워서 보여주며 딸을 이겨먹으려고 한다.

우리는 자기의 몸과 놀고, 몸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더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보라, 내일 내가 아플지 아닐지 알 수가 없고, 코로나 주사를 맞고 얼마나 아플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간 자신의 몸과 친숙해 진다.

어릴 때에는 추운 건과 서늘한 것과 시원한 것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감기에 자주 걸리고는 했다. 나는 내 몸을 돌보는 힘이 적었고, 옆에서 엄마가 아빠가 챙기지 않으면 감기에 걸리기 일쑤였다.

이제 나는 내가 밥솥에서 갓 퍼낸 뜨거운 밥을 좋아하고, 팔팔 끓이다가 그릇에 담은 국을 좋아하며, 김치 없으면 밥을 못 먹고, 김치만 맛있으면 김치 만으로도 밥을 먹는 것을 안다. 어릴 때는 참지 못했던 요구르트도 잘 먹고, 그저 삼키기 급했던 치즈도 이제는 좋아한다. 소주는 싫고, 맥주는 맛있다. 왼쪽 무릎보다 오른쪽 무릎이 안 좋은 편이고, 아이들 안아주다 삐끗한 적이 있어서 손목은 자주 조심해서 써야 한다. 목소리는 크지만 신나서 수업하다 보면 목이 금세 안 좋아지니, 늘 덜 신나게 수업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내 몸 쓰는 재미가 있으니, 아이들에게 몸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게 그렇게 배우기 쉬운 게 아니다. 그러다 갑자기 간지럼 참는 법이 생각났다.

아마도 아이들은 어른보다는 간지럼에 약한 것 같다. 나는 4학년 정도 때부터 간지럼을 덜 탔던 것 같다. 아빠는 대개 퇴근하면 말이 없는 편이었다. 밥상에는 소주 한 병이 있고, 밥과 소주를 드시고는 주무시고는 했다. 더 드시는 법도 없고 딱 한 병. 하지만, 거의 매일이었다.

그런데, 가끔 밖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는 대개 만취해서 들어오곤 했다. 만취의 만취 상태가 아닐 때에는 그래도 과일이라도 한 봉지 사 오면서 우리들(누나, 나, 동생)에게 살가운 척을 하셨다. 평소와는 다르니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잠들려는 나를 간 지리 고는 했다. 나는 술에 취해 그러는 아빠가 싫기도 했고, 술 취한 덕분에 아빠가 친한 척하는 게, 안쓰럽기도 했다. 아빠가 갑자기 친한척하며 간지리는 게 싫으면서도, 아빠가 친한 척하는 게 좋기도 했다. 주말이면 온 몸이 쑤신다는 아빠를 나는 자주 그리워했다. 다행하게도 우리 동네 친구들의 아빠들은 대개 비슷비슷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끼리 무엇이든 하고 놀았다.

아무튼 그때 아빠의 간지럼이 싫을 때 견디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두둥. "저 손이 내 손이다" 생각하는 것. 내 손으로 아무리 간질여도 간지럽지가 않다. 누가 간질이든 그게 내 손이라 생각하면 덜 간지럽다. 전혀 간지럽지 않은 게 아니라, 연습이 좀 필요하다. 그게 연습이 되고 나면 참을 수 있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자극에 무뎌진다. 나는 아직도 아이들을 간지럽히며 노는데, 아이들은 내게 와서 나를 간지럽히지만, 나는 당하지 않는다.

오늘은 딸에게 그 비법을 가르쳐줬다. 그리고 간질였다. 딸은 견디지 못했다. 하하. 배운다고 바로 될 리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