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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목이 부은 딸과 우리동네 빵꾸똥꾸

초전동 빵꾸똥꾸

초등학생들에게는 백화점 같은 곳이겠구나..


힘이 없어. 딸 옆에 누워서 힘이 없다는 딸이 손으로 밀면 나뒹구며 딸 얼굴에서 웃음을 꺼내는 데, 정말 힘이 없었던 거다. 장난쳐서 미안해 딸.
7시 20분에 아내가 열을 재보는데, 38도.
딸은 코가 막히고 목이 아프다고 한다. 어제 밤 딸이 잠들기 전 차가운 우유를 준 건 바로 나.
딸 감기에 불을 지른 죄책감을 안고 시간표를 머릿 속으로 살펴본다.
1, 2교시 수업이 없어서 아내에게 내가 딸을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했다.
교감선생님에게, 옆자리 선생님에게 전화를 한다. 교감선생님은 수업 걱정을 하고, 학교에서 수업이 제일 중요한 일이라는 건, 교사가 학교를 비울 때에만 잘 드러난다.
아무튼 옆자리 선생님에게 부탁해서 ‘지각’처리를 하고 나는 딸을 살핀다.

아파도 웬만해서는 축 처지는 경우가 없는 아이다. 튼튼해서 그럴까,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서 그럴까.
그냥 누워 있고 싶다고 해서 침대에 눕힌다. 딸은 체온계를 들더니 자기 얼굴부터 몸까지 구석구석 열을 재어 본다.
열을 내려야 하지만, 춥다고 하니 이불은 덮은 채로 물수건만 이마에 얹어준다.
8시 30분 병원으로 가기로 한다.
찬바람을 한 방울도 맞게 하기 싫어서 지하주차장으로 가 차에 태우고 200미터 떨어진 동네 약국으로 간다.

동네 소아청소년과라지만 제법 유명해서 늘 손님(?)으로 붐비는 구민지 소아청소년과로 갔다.
다행히 2등. 열을 재고 몸무게를 말하고 진료를 본다. 목이 부었고 그래서 항생제를 먹어야 겠고, 금요일에 다시 오라고.
집에서 주차장까지, 병원주차장에서 병원까지, 약국까지 딸은 옷을 두껍게 입고도 춥다고 해서 나는 딸을 업었다.
딸, 아프지마. 라고 말할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나는 참 주책이다.
약국에서 비타민을 두 개 받아들고 차로 갔다가, 얼마전에 생겼다는 새로운 문방구에 가보기로 했다.

빵꾸똥꾸.라니. 거침없이 하이킥을 떠올리는 건 나 같은 중년층이겠지. 생각하면서도
빵꾸라는 말에서 문방구라는 단어를 연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들었다.

점빵이 대세일 때는 대개 가게의 물건이란 주인의 취향 혹은 게으름 혹은 랜덤하게 쌓여 있는 것이었다.
세울 수 있는 것은 세우고, 잘 세워지지 않는 것은 눕혀놓는 방식이다. 문방구도 그랬다.
하지만, 무인매장인 빵꾸똥꾸는 그렇지 않다. 거의 모든 물건을 걸려 있거나, 꼭 맞는 틀에 끼어 줄을 서 있다.
너무나 정연해서, 문구점이 주는 그런 산만함이 없다.
마치 편의점에 처음 갔을 때 느꼈던 뭔가 신세계 같은 기분. 갑자기 10년을 더 살아내고 만나는 것 같은 미래의 모습.
무인매장 문방구도 그런 느낌이었다. 먹을 것부터 작은 펜까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것 같았다.
시각적으로 너무나 정연해서 책방으로 치자면 모든 책이 책등이 아니라 책표지를 드러내고 있는 느낌이다.
모두 강조되어 시각을 앞도한다.
초등학생들에게 이곳은 가히 백화점 같지 않을까.
딸은 스티커 두 개를, 나는 아들을 위해 포켓몬 카드 두 장을 골랐지만, 무인 계산기가 되지 않았다.
주인에게 전화하고 주인이 나타나고 또 10분을 기다렸지만, 기기 이상으로 계산을 할 수가 없었다.
무인매장은 기계가 고장나면 사람이 있어도 계산이 안된다.
무인매장은 사람을 보조하는 게 아니라, 배제한다.
내 전화에 재빨리 오신 사장님은 오늘이 오픈일이라고 하시면서, 미안하다며 작은 감자 과자 두 개를 주셨다.
계산이 끝끝내 안되자(계산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 에러였던 것 같다. 이건 프렌차이즈 관리자가 나와야 가능한 듯.)
미안하다며 딸이 골랐던 스티커 중 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집에 와서는 밥에 계란찜을 넣고 비비고, 김을 뿌려 딸에게 먹이고, 약도 먹였다.
내 침대로 데려가 눕히고 물수건을 이마에 대줬다. 딸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방 안에 가습기를 틀어주고, 문을 닫고,
오늘은 온라인 수업을 하는 아들에게 인사하고 나는 출근했다.

약을 먹었으니, 오늘 밤 딸이 좀 잘 자기를. 이제 밤에는 절대 찬 우유를 주지 않는 아빠가 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