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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매일 같은 바다로 간 사나이

나의 문어 선생님

나의 문어 선생님 후기

벅스뮤직에서 들을 수 있는 영화음악 방송을 듣는 데, 넷플릭스 메인 화면에서 자주 봤던 나의 문어 선생님을 언급했다. 강력하게 추천하는 영화라는 것. 그래서 주말에 봐야지 생각하고 있었고 오늘이 그날이다.

일요일 아침 9시 40분이면 동물농장을 기다리는데, 오늘은 현충일 기념식 때문에 시간이 미뤄졌다. 가족끼리 외출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들은 TV동물농장을 못 보게 된 것. 그래서 나는 이때다 싶어서 티비를 켜고, 넷플릭스 앱을 열어 나의 문어 선생님을 티비로 쏘았다.

문어가 영리하고 주변 환경에 맞추어 자기 몸의 색이나 질감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들어 봤지만, 사람과 관계 맺을만큼 영리하리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사람과 문어의 관계 맺기…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영화라 별다른 갈등이나 긴장은 기대하지 않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문어가 손을 내밀 때 한번 놀라고, 문어가 상어에게 쫓길 때 가슴 졸이게 되었다. 매일 문어를 보러 가는 남자와 그 남자에게 신뢰를 보내는 문어. 단, 남자는 문어를 볼 수는 있지만, 문어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가 없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문어가 공격을 당해도 쳐다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문어의 죽음까지 보고 났을 때, 그는 아쉬움과 슬픔을 느끼지만, 한편으로 홀가분함을 느끼기도 하고, 문어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쳐다만 보고 서로 간의 신뢰만 생겨도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문어와 인간의 관계라니, 전무후무한 종류의 관계이니, 다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문어의 삶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삶과 자신을 둘러싼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제목이 문어 선생님이 아니었을까. 그는 문어를 통해서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했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고 의미있다는 점도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다고. 문어가 상어에게 잘린 다리가 다시 생겼을 때,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을까? 아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을까? 다 보여주지 않아서 다 알 수는 없지만, 이 시점에 그는 문어와 자신의 삶에서 동질성을 발견한다. 아들과 함께 물에 들어가서 아주 어린 문어를 만났을 때, 그 어린 문어는 마치 이전에 그가 알던 문어가 환생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관계가 탄생하려면, 서로 판단하지 못하고 조심러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상대에게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을 지 매우 조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히 그러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자칫 조급하면 신뢰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우리는 늘 관계를 갈구하고 관계를 맺는다. 그 대상이 꼭 다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일단 견실한 관계를 맺고 나면, 그 관계 덕분에 하루하루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기도 한다. 더 깊이 몰입할수록 더 깊은 일체감을 경험하게 된다. 문어가 짝짓기를 준비하면서 그는 문어의 죽음이 다가온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명백한 종말을 바라보는 느낌은 어떠할까? 그렇지만 개입할 수 없다는 갑갑함은 어떻게 견딜까.

아들과 나란히 앉아 보면서 처음에는 저런 문어 친구가 있으면 좋지 않겠나 하면서 봤는데, 나중에는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있는데,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관계를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