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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성 - 인간의 조건(한나 아렌트)을 읽다가

다원성 -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p57.

어떤 누구도 지금껏 살았고, 현재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게 될 다른 누구와 동일하지 않다는 방식으로만 우리 인간은 동일하다. 이 때문에 다원성은 인간 행위의 조건인 것이다.

가끔 이름 문장을 만나면, 나는 평균의 지력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억지로, 저런 문장이란 쉽게 이해되는 문장도 쉽게 쓰여진 문장도 아니겠지 생각하려고 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점이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인 것처럼, 인간은 너무나 유일함을 뽐낸다는 이유로 인간은 동일하다니. 이 문장을 며칠째 입에 담아두고, 다시 머리로 끌어올리고, 다시 입에 담아두고 머리로 끌어올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어떤 인간을 얼마나 이해하거나 용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쉽게 인간같지도 않다라고 말하기는 더 이상 어려울 것 같다. 인간은 제각각의 모양이다. 만약 우리가 인간다움이란 설정을 하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모두 인간 같지도 않다고 말한다면, 우선 우리 자신부터 많은 경우 인간다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잘못을 할 때마다, 적어도 나 자신에 대해서는 그 인간다움의 기준을 자꾸 낮춰야만 나를 인간으로 용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차라리 모든 인간을 ‘저런게 인간이구나.’ 하고 체념섞인 한 숨을 내쉬며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아, 이때 범죄자는 또 어떻게 대할 것이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아직 거기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가끔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지?’ 라며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기막혀 할 때가 있다. ‘절대 나는 저러지 않아야지.’ 다짐하기도 하고, 금세 ‘그 사람과 나를 거리두기’ 한다.

하지만, 다른 상황에서 나도 별 차이가 없다. 백번 양보해서 내가 약간 나은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그저 약간 나을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정규분포를 생각하면, 그 사람이나 나나 그저 평균 근처에 수없이 모여 있는 점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내가 부처도 예수도 아니고 깨달음에 이른 선지자도 아니다. 온갖 사소한 문제에 어쩔 줄 몰라 허우적대는 일반인일 뿐이다.

내가 이렇게 터무니 없이 보통의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편리한 점이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기를 조금은 주저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도 말은 쉽지 그리 될까 싶기는 하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가 말한 대로의 인간의 다원성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모두 다르고, 그것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고, 그러니 나와 다른 모든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점에서 정말 인간다운 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