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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다락방 속 '엔리오 모리코네'

내 다락방

"아빠, 나 백살 되면 어떻게 할거야?"
"음. 그때는 아빠는 죽고 없을 것 같은데."
"할아버지 되어서? 안돼."

얼마전 아버지 생신 케이크를 사고 초를 챙겼다. 69개. 나는 전혀 모르던 비밀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면서 많이 놀랐다. '이제 아빠가 70대가 된다.' 국민학교 시절 읽던 '어린이 충효시리즈' 에는 아이들은 얼른 자랄 생각만하고, 부모의 늙음을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내가 딱 그 아이다.

어릴 때에는 내 주위 모든 게 생기 있었다. 우선 나부터 그랬으니. 세상은 신기한 것 투성이라 재미도 있었고 겁도 났다. 알고 싶었던 것도 많았고, 몰라도 될 것도 있었다. 지금도 내 주변은 생기로 가득하지만, 알게 모르게 나에게 영향을 줬던 사람이 그 생을 마감하고 있다.

엔리오 모리코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페이스북으로 알게 되었다. -역시나 페이스북은 내게 최고의 인터넷이구나. 털썩. - 그리고 나와 그의 연결점은 무엇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어제 밤에는 그 연결점을 그려봤다.

다락방.
누나가 쓰던 다락방, 그걸 물려받아 쓴 나. 저 좁은 다락방에서 나는 라디오를 듣고, 빗소리를 듣고, 'Cinema Paradiso' OST를 들었다. 나는 아직까지 시네마천구를 보지 않았다. OST 카세트 테이프는 정말 늘어져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할 때,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틀었다. 시네마 천국의 음악을 듣고 있자면 점점 빨라지는 그 긴박감만큼 집중이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마음을 가라앉혀 주기도 하고. Love Affair는 또 어떤가. 아네트 베닝의 눈가를 적시는 음악.

어제, 오늘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자꾸 다락방으로 왔다 갔다 했다. 인간의 감각 중 후각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데, 그래.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 다음은 청각이 아닐까. 후각은 강렬한 자극에 '어쩔 수 없이' 반응하기도 하지만, 청각은 온전히 '주의를 기울 일 때' 그 감각이 살아난다. 냄새는 거부할 수 없지만, 소리는 거부할 수 있다. 청각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니, 후각만큼 오래 기억되지 않더라도 후각보다 더 분명히 기억되지 않을까.

저 다락방에서 오늘을 예상하지는 못했는데, 나이가 들고, 내 주변에서 나의 세계를 구상하던 사람들을 잃게 되니 내 세계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다. 딱 그 느낌만큼 그들에게 감사하게 된다.

엔리오 모리코네만큼은 안되겠지만, 나도 누군가의 세상을 구축하는 데 일조할 수 있으려나. 흠. 내일 수업이나 잘 하자. 전교생이 등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