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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관련/또 다른 학교 이야기

남겨진 디저트와 시험 끝

시험이 끝나고 나면 학생들은 대개 곤죽이 되어 있고, 시험 직전에 그랬던 것처럼 수업을 힘들어한다. 혹은 격렬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한다. 그 마음이 한편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보면, 얼른 수업을 시작하고, 성적이 오를 수 있도록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내일 협의회 간식도 사려고 밖으로 나섰다. 한 커피숍에서 그릭 요구르트 메뉴를 팔았다. 6000원짜리 그 메뉴를 시키고 기다렸다. 플라스틱 커피용기에 그릭 요구르트, 그 위에 시리얼, 블루베리 등이 얹혀 있었다. 그럴듯해 보였다. 차가운 셔벗 같은 요구르트를 기대하며 한 숟가락 뜨려는데, 잘 퍼지질 않았다. 씨리얼과 블루베리를 헤치고 들어가서 요거트를 한 스푼 떠서 입에 넣는데, 약간 치즈향이 나는 건 괜찮았지만 너무 되다. 부드러운 케이크를 먹으려고 갔다가 딱딱한 떡을 먹는 기분이랄까.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 왔다.

남겨진 디저트

손님에게 판 메뉴를 손님이 남기고 가면, 매장 주인은 무슨 생각을 할까. 예전에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니, 손님들이 남기고 가는 그릇이 바로 음식에 대한 반응이라고 하더라. 잔반이 얼마나 나오느냐가 반찬에 대한 평가라고.

그릭 요구르트가 너무 돼서 먹기에 편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고 나오지는 않았지만, 남은 요구르트를 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나는 감히 학교가 서비스를 주고받는 공간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수업을 구안하는 사람은 교사라 결국 교사는 음식을 차리는 사람과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은 한다. 수업이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마음먹은 대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책임은 나에게 더 많이 돌아오게 마련이다. 디저트 가게 손님은 메뉴가 맛이 없으면 다시 오지 않겠지만, 학생은 어떤가.

학생들의 서술형 답안을 채점하고 기대보다 못한 성적에 나는 마음이 상했었다. 그런데, 두 해 동안 내가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들의 성적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좋지 않다. 일종의 책임감이라 할 수 있고, 또 이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더 해야 하나 고민스러운 기분도 든다. 이런 기분은 작년만큼 내가 수업에 시간을 들이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자격지심. 내가 충분히 더 노력했다면 이런 기분은 좀 덜 들지 않았을까. 필요한 노력이라면 더 부으면 된다.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게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금 기분이 언짢다.

교사에게 보장해야 할 시간은 수업을 준비할 시간. 교사가 사수해야 할 시간은 수업을 준비해야 할 시간. 누가 보장해주지 않아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투쟁이다. 수업은 매일 진행되지만, 수업 준비는 매일 이행되지 않는다. 대개 학교의 시간이란 긴급한 일들을 해결하는 데, 먼저 투여되고 나는 오늘도 긴급한 일을 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다. 예산을 성립하고, 내일 지출을 위해 품의서를 올리고, 간간히 선생님들의 복무를 결재하고, 가정통신문을 전송하고.. 해야 할 게 많은 데, 정말 중요한 것에 시간을 쓰지 못한다는 점에서 기분이 언짢다. 아침에 출근하면 어딘가 구석에 박혀서 수업 준비부터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더 일찍 출근할 수 있다면, 더 일찍 출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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