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학교 관련/학급이야기

고등학교 축제 전야, 택배야 오너라.

 

축제 준비 교실 풍경


우리는 언제까지 서로를 기억할까. 마스크 쓴 모습으로만 서로를 보다 보니, 나중에 마스크를 벗고 만나게 되는 날에는 서로 알아보기 힘들어 하지는 않을까.

축제전야


고등학생의 축제란 동아리 발표, 학급 부스, 갖가지 공연이 주된 테마다. 코로나가 아니라면, 서로 다른 학교의 축제에 구경을 가기도 한다. 여고라면 남학생들이 찾을 것이고, 남고라면 여학생들이 찾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축제’라는 게 가능한가? 부터 따져봐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나름(?) 조심조심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학급별로 무언가 체험할 수 있는 꺼리를 만들어서 꾸미고 있다. 나는 그냥 보드게임장을 만들었으면 했지만, 학생들은 오늘 하루 종일 귀신의 집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애타게 기다리는 택배는 오지 않고,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았지만, 오랜만의 어수선한, 부산스러움이 조금 반갑다.

동아리 발표를 준비하느라 뜯고 붙이고 발표를 연습하고, 교실 안을 꾸미느라 모두들 바쁘다. 내일 갑자기 축제가 취소되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모두들 들떠 있다. 별로 하는 일이 없어서 나른함, 약간의 지겨움, 이런저런 구경거리 덕분에 학교 안은 왁자하다.


좋은 사람들


예전에 한번 우리 학생들을 두고 좋은 사람들이라고 쓴 적이 있다. 우리반 학생은 23명인데, 오늘 남아서 축제준비를 한 학생이 13명이다.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부족했던 물품이 택배로 배송되어 왔고, 학생들은 집에 갈 생각이 없다. 귀신의 집이라 교실은 암실로 만들기 위해 창문을 모두 신문지로 가리고, 거기에 멀칭비닐을 두 세겹 덧대어 완전히 깜깜하게 만들어 버렸다. 부적을 쓰고, 부두인형을 만들고, 신문지에 뻘건 손바닥 무늬를 찍고, 홍보용 포스터를 만들고, 귀신의 집에 들어오기 전에 작성해야 하는 동의서를 만들고, 귀신 가면을 꾸몄다. 느슨하지만 차근차근 일을 해나갔다. 특히 반장은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정더로 바삐 뛰어 다니며 이 일을 했다가 저 일을 했다가 정신이 없었다.

축제 준비 때문에 학원을 뺄 수 있다며 좋아하기도 하고, 한 켠에선 끝나는대로 과외를 가야 한다면 숙제를 하는 학생도 있다. 나는 늦어서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걱정이 되는 데, 이 녀석들은 걱정이 없다. 밤을 샐 수는 없느냐고 묻고,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다.

학교에서의 생활은 학교에서의 역할 찾기다. 누군가의 친구로서의 역할에 만족하고 오로지 친구를 보러 학교에 오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역할을 찾아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좋은 존재감을 찾아가는 학생들도 있다. 전자도 응원하지만, 후자를 보면 감사하고 고맙고 자랑스럽다. 우리반 학생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라 고맙다. 아직도 더 성장하고 자랄 사람들이지만, 좋은 씨앗들이다.

미안 담임 선생님은 먼저 간다


그래도 끝까지 완성 하는 것을 보지는 못하고 나는 퇴근을 했다. 어제 야자 감독을 해서 이틀 연이어 늦게까지 있을 수가 없었다. 교실에 다시 한번 가서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세상 쿨하게, 안녕히 가세요. 라고 말해줘서 또 고마웠다. 과연 얼만큼 완성하고 집에 갔을까 요녀석들.

내일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