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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고등학교 교사의 일상적인 피곤함에 대한 기록

안개낀 김시민대교


평범하게 피곤한 날이다. 오늘은 학교에서 민주학교 만들기와 관련한 연수가 있었다. 강사님은 몇 가지 질문을 주었고, 그 질문으로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었다. 놀라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점은 선생님들이 매우 피곤해 하는 데다가, 학교를 그만두는 것은 어떨까에 대해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그 점은 나도 다를 바가 없고, 오늘처럼 피곤한 날에는 더 열심히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8시에 학교에 도착해서 수업을 마치면 4시 30분이다. 그 사이 챙겨야 할 게 이것저것 많은데, 여기에 쓰려니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여러가지다. 아침에 학생들이 자가진단 했는 지 확인,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조례를 하는데, 와중에 몸이 아프거나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 학생들은 챙긴다. 가족 중 코로나 검사 받은 학생이 있어서, 그 내용은 보건 선생님에게 전달한다. 출석부에 기록도 하고 반장에게는 선생님들이 혹시 물으시면 답을 하라고 이르고 나온다. 곧바로 1교시 수업이 시작된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학생들 학습지를 평가하고, 수행평가도 결과도 다시 조회해본다. 체험학습 계획을 다시 작성하고, 그날 쓸 예산 계획을 작성한다. 융합수업 관련해서 자료를 내라는 게 있어서 수업안을 하나 만든다. 2022년 교원 단체 보험 가입도 하라고 해서 그것도 선택한다. 오늘은 본래 학부모 공개 수업일이지만, 학부모님 중 공개 수업을 보러 오신다는 분은 없었다고 한다. 잠시 남는 시간에 학습지를 복사하고, 2차고사 시험 전까지 수업시수를 모두 세어보고, 각 반 진도를 어느 정도 나갈 수 있을 지 세어보고 기록한다. 잠시 같은 코스로 체험학습을 가는 학급의 선생님과 체험학습 소감문을 어떻게 만들지 논의한다. 누리교육지원금 사용에 대한 안내 가정통신문을 기안해서 상신한다. 점심을 먹으러 간다. 점심을 먹고 바로 교무실에 올라와서 다시 수업을 조금 준비한다. 점심 시간에는 여러 학생들이 들어와서 담임 선생님을 찾기도 하고, 휴대폰이 필요하다고도 하고, 테이프를 빌려달라고 하기도 한다. 잠시 잦아들면 커피 한 잔을 급히 내려서 마신다.

4시 30분에 종례지만, 그때 마치고 퇴근 하는 경우가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야자감독이 있어서 10시까지 학교에 있어야 한다. 마치고 집으로 오면 10시 30분이다. 일주일에 한번 야간 수업이 있어서 6시 30분부터 8시까지 수업을 해야 한다. 그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8시 30분이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8교시 수업이 있어서, 4시 40분부터 5시 30분까지 수업을 한다. 그리고 마치고 오면 6시가 넘는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준비할 틈이 거의 없어서 주말 동안에도 쉴 수가 없다. 코로나로 인한 학력 격차를 해소 한다고 정부에서는 일괄적으로 학교에 돈을 보냈고, 이 돈을 소모해야 한다. 그래서 곧 매일 8교시를 하게 된다. 일단 일과가 5시 30분에 끝난다는 말이다. 기존에 있던 야간수업, 야자감독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수업은 늘어도, 수업 준비할 시간이 같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거대한 일 하나가 나를 힘들게 하지 않지만, 작은 일들이 모여 손 쓸 수 없이 몸을 무겁게 만들어 버린다.

수능이 한 달도 남지 않았으니, 수능날이 다가오면, 수능시험장을 준비하기 위해서 광나게 청소하고 각종 부착물을 붙이고 반사될 만한 것들은 모두 종이로 씌운다. 수능 전날에는 수업을 마치고 감독관 교육을 받아야 하고, 수능날에는 감독을 해야 한다. 수능감독을 하다가 실수하면 개인적으로 큰 고통을 당할 수가 있다. 민원이 들어와서도 안되며, 감독 중 실수를 해서도 안된다. 잘못하면 뉴스에 난다. 빠져나갈 수 없는 일상의 피로함이 오늘은 깊게 느껴진다. 다른 선생님들이 ‘심각하게’ 힘들다고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되니, 내 마음도 조금 더 무거워져버렸다. 푹 자고 나면 좀 괜찮아지려나.

오늘은 딸이 아침에 일어나기도 전에 출근했고, 마침 내가 퇴근할 때까지 딸이 잠들지 않고 있어서 잘 자라는 인사를 할 수 있었다. 9시에는 아들이 잘 준비를 마쳤고, 오늘부터는 다시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남의 아이 키우려다 내 아이 놓친다는 말이 딱 맞는 말처럼 느껴지는 오늘이다. 내일은 일단 야간자율학습 감독인데, 그런 날에는 아침에도 밤에도 딸의 잠든 얼굴만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