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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모임

5월 먼북소리 독서모임 후기 : 섬에 있는 서점

내가 한 권의 책이라면, 나는 어떤 이야기로 나를 채울 수 있을까? 나의 표지는 누구에게 디자인을 맡길까? 내 책의 앞머리에 추천사는 누구에게 부탁할까? 내 글을 보고 다듬어줄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마침내, 내 인생이야기라는 책을 누구에게 권해주는 게 좋을까? 재미있는 읽기가 될까?

독서모임을 정리하는 글쓰기를 하려고 앉으면, 그 피곤과 부담으로 그만 간단히 쓰고 빨리 자야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고, 오늘도 그러하다. 2시간 동안의 독서모임을 끝내고, 그제서야 나는 샤워를 하고, 아들 방으로 가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조금 읽어주고 나왔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그 이야기는 어떻게 이야기로 남길 수 있을까 생각하는 중이다.

소설을 좋아해서 읽든, 소설은 자주 읽지 않아서 _균형_을 맞춰주려고 읽든, 재미있기만 하다면 소설은 그 역할을 다 한 것이다. 우리 인생에 피와 살이 되는 지식과 지혜는 자기계발서로 채워지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야기 아닌가. 작정하고 이야기를 쓰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소설가이니, 소설가가 성공적으로 책무를 해냈다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섬에

섬에 있는 서점은 사건의 전개가 뚜렷하고 인물들도 그리 많지 않다. 독서모임 회원들이 좋아할 만한 서점을 배경으로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주는 사람, 혼자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지 않으려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버림받은 사람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p34. 이게 만약 소설이라면, 나는 이쯤에서 책을 던져버렸을거야.

p106. 마룻바닥위 마야의 시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신발이다.

p109. 어떤 아이들은 신발가게에, 어떤 아이들은 장난감 가게에 맡겨진다. 인생은 어떤 가게에 맡겨지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몇 개의 밑줄을 나누었다. 나는 어처구니 없게도 책을 학교에 놔두고 와서 기억에 의존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정확하게 기억나는 구절들이 있었다.

마야의 시점에 대한 구절을 보고, 우리는 우리의 지평이 넓어진 사건, 나의 눈높이가 달라진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다니던 약국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했다. 늘 계산대가 내 눈 앞을 벽처럼 가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되어 놀랐던 때. 다른 분은 소설만 읽다가 책 읽기의 지평을 넓히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으며, 라식 수술 때문에 정말 개안했다는 경험을 이야기했다. 또 다른 분은 어릴 적 아이의 키가 집 한쪽 벽에 배꼽 높이 정도에 표시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눈을 마주할 만큼 아이가 자라서 놀랐다고.

우리는 중요한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에이제이가 좋아하는 작품과 그 작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고, 에이제이의 죽은 아내의 언니와 경찰소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너무나 밟고 똑똑한 마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마야의 친부이지만, 나쁜 남자로 살다 죽는 다니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소설가가 왜 고가의 고서를 사용해서 이야기를 열고 닫았을까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야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도 이야기했다. 마을에 있어서 서점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오베라는 남자가 생각난다는 이야기도 했다.

인문학이나 사회학 도서를 읽고 나면 의외로 폭넓은 논의가 되기 힘든 때도 많다. 그저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다에서 끝나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설 덕분에 우리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야기로 이어갔다. 기억해야 할 것은 없었지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가운데, 인물들의 매력을 좀 더 느낄 수 있었다. 한 편의 소설이 있고, 그 이야기를 끌어가는 등장인물이 있지만, 여러 독자가 나타나면 그 독자의 시선이나 집중한 부분에 따라서 소설과 등장인물은 새로운 굴곡과 면모를 보여준다. 어떤 책이든 함께 읽으면 더 즐겁다. 오늘의 결론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