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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모임

진주 독서모임 : 먼북소리 12월 : 글이 사진이 된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모임개요

  • 참석자 : 박, 정, 정, 이
  • 일시 : 12월 17일 19:00 ~ 21:00

진행순서

  1. 참석자 근황 이야기
  2. 책에 대한 총평
  3. 다시 보며 질문 정리하기
  4. 질문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5. 총평으로 마무리

12월 먼북소리 글로 쓴 사진

깊어지는 근황

갑작스럽게 두 분이 참석하지 않으셔서 오늘은 네 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를 마감하는 뜻깊은 독서모임은 시작되었다. 또 다시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같이 한 자리에 앉아, 책을 하나씩 준비하고 서로에게 선물도 하는 자리가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근황을 이야기하는 자리이지만, 이제 근황을 이야기하는 시간도 소중하다. 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나머지는 마이끄를 끄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Zoom으로 진행했을 때의 유일한 장점은 여기에 있다. 들을 때는 듣기만 해야 한다는 점.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가끔 서로의 말을 끊거나 잘라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Zoom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우리는 마이크를 돌려가며 이야기하고, 그래서 더 잘 듣게 되기는 했다. 어떤 분은 나이듦에 대해서, 그것과 함께 밀려오는 불편함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또 한분은 둘째를 가지는 데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고, 또 한분은 아이 밥을 먹이고 와서 아이를 안고 이야기를 하셨다. 서로 자신의 삶의 일부를 드러낼 수 밖에 없어서 조심스럽고도 좋다.

오늘의 질문

  1. 포토카피 하고 싶은 사람이나 상황이 있는가?
  2. (책의 내용이 아닌) 상황이 고스란히 각인된 사진이(바로 떠오르는 장면) 있는가?
  3. 여덟번째 에피소드 바위 아래 개 두마리 중. P48 이런 제기랄…. 두 팔을 땅딸막한 몸에서 약간 떼어 벌리고….미동도 없이 선 그의 볼에, 눈물이 타고 내렸다.
    안토닌은 왜 눈물을 흘렸을까? 왜 제목을 바위 아래 개 두마리라고 지었을까?
  4. 다섯번째 에피소드에서, 저자가 런던지하철역에 노숙자들이 잘 수 없도록 만든 새로운 설비를 탁월한 구상이라고 표현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존 버거의 이 작품의 원제는 Photocopies 이다. 사진으로 만드는 복사본, 혹은 사진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책 속에 사진은 단 한장 뿐이다. 존 버거는 글로서 사진을 혹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모든 분들이 책이 주는 따스함, 간결하지만 정확한 표현, 적절하고 뛰어난 비유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어떤 생각을 주장하는 글이라면 갑론을박 질문할 거리가 많았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질문을 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은 한 가지씩만 정했다.

사진을 봐도 그럴까

사진을 봐도 그럴까, 존 버거는 깊이 보여주지만, 정밀묘사 하듯 소재를 뜯어 내고 절게하지는 않는다. 글을 보며 우리는 각자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누구는 보았던 것을 다른 누구는 보지 못한다. 함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던 부분에서 다른 분은 잠시 책을 놓고 눈을 멈추고, 발로 땅을 콕콕 찍듯 잠시 고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은 사진을 봐도 그럴까. 여러 사람이 하나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내가 가려운 줄 몰랐던 부분을 누가 긁어주는 것처럼, 불편하지도 않았는데, 시원해 진다.

추억이라고 기록

우리는 아주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기도 하고 아주 힘든 시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혹은 그 아픔을 기록하려고 한다. 그의 작품 속에도 나오는 앙리 베르그송처럼 찰나의 순간을 잡아낼 수 있는 사진가의 모성애를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머리 속을 뒤져가며 내 기억에서 도드라지는 부분, 움푹 패인 부분을 찾아내어 공유했다.

누군가에게는 러시아식 사우나가, 누군가에게는 리코더가, 누군가에게는 장례식 혹은 가족이 기억해야 할 것이고, 추억해야 할 것이고, 풀리지 않은 숙제 같은 것이기도 하다. 존 버거처럼 풀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밝은 눈을 가지고 빠른 손으로 써내려간 저자가 부럽다.

하루키라는 소설가의 일

하루키는 자신이 가진 소설가로서의 재능이 평가하지 않고 관찰하기라고 했다. 모르긴 몰라도 하루키는 분명 존 버거를 존경했을 것이다. 존 버거의 작품 속에서 나는 어떤 것의 가치를 가늠하는 단어를 찾기가 어렵다. 매우, 정말, 따위의 격앙된 표현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가장 좋았던 책 속의 구절 중 하나

새로 낼 책에서 과장하지 말게. 지나치게 표현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리얼리스트로 남아 주게........ 그가 자신의 건강상태를 말하면서 사용하는 형용사는, 꽉 조이지만 신고 먼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신발을 얘기할 때 쓰는 형용사와 같은 것이었다.

 

친구 구진을 묘사하면서 존 버거는 친구가 부탁한 것만큼이나 간결한 표현은 구사하고 있다. 지나친 게 아니라 부족해 보일 만큼 자근자근 표현하는 힘. 대상을 사랑해서 오래 볼 수도 있지만, 오래 보는 데에서 사랑을 찾아낼 수도 있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라 실천이라면, 오래보는 행위가 사랑을 선행할 지도 모를 일이다.

찾아즐길 거리

이 책을 읽으면서 p31에 언급된 셀로니어스 멍크가 연주하는 <에피스트로피 Epistrophy>를 찾아 들었다. 모르는 계곡 이름이 나오면 찾아보고, 낯선 예술작품이름이 나오면 찾아봤다. 그렇게 해야만 존 버거가 설명하는 사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분들과 이야기함으로써 이 포토카피를 더 잘 볼 수 있었다.

아래 시는 책 속에 언급된 시인 루미(13세기 페르시아 법학자이자 신비주의 시인)의 시

봄의 과수원으로 오라. 여기에는 볕이 있고 포도주가 있고 석류꽃 그늘아래 달콤한 연인이 있다. 그대 만일 오지않는다면 이 모두 아무것도 아니다. 그대 만일 온다면 이 모두 아무것도 아니다.

연말 마무리

갑작스럽지만, 올해 책읽기를 돌아보고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나는 비경쟁독서토론 연수를 다녀온 일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 먼북소리 독서모임은 잘 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모두들 이 모임을 통해서 책을 읽는 게 즐겁고, 이 모임 덕분에 더 열심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책은 우리가 모여서 두 발로 짚을 수 있는 굳건한 놀이터가 되고, 하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재료가 되어 준다. 더 자주 모이고 더 많이 읽고 직접 만나면 더 좋겠지만, 지금도 좋다는 걸 인정하자. 지금이 좋아야 다음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