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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관련/수업이야기

주제중심융합 수업 마지막 날 | 융합이 일어나는 날

 

"얘들아, 발표하자." (나 아님) 

 

지난주부터 하루 2시간씩, 3일간 방과 후에 진행한 주제중심 융합수업을 오늘 끝냈다. 학생들은 모여서 자기 짝과 함께 발표할 내용을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발표 내용이나 형식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았다. 우드락에 포스터처럼 만들어 온 팀이 2팀, 기고문을 쓴 팀이 2팀, 프레젠테이션으로 준비한 팀이 4팀이었다. 기고문을 쓴 2팀은 기고문을 그냥 읽지는 않고 프레젠테이션도 준비해서 발표했다. 

진행 

- 먼저 3.6.9 게임으로 발표 순서를 정했다. 

- 두 명이 나가서 준비한 내용을 발표 

- 발표가 끝나면, 자신의 발표와 수업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

- 교사들의 소감 

- 단체사진 

 

나의 소감 

학생들의 발표는 좋았다. 우리 주제가 '탄소발자국'이었던 만큼, 탄소발자국에 대해서, 환경 문제에 대해서, 환경문제로 인한 위험의 불균등한 분배에 대해서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학생들이 알고 있는 부분이 적다고 느꼈지만, 작은 것부터 실천하겠다는 다짐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발표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도 있었지만, 모두들 개성 있는 방식으로 발표해주어서 고마웠다. 그러한 발표 모습은 내 기대를 뛰어넘었다. 내 소감을 짧게 말할 시간이 되자 나는 마음속으로 무슨 말을 할까 좀 준비를 했다. 아래는 학생들에게 말한 내 소감을 다시 기억하고 옮긴 것이다. 

우선 발표 감사합니다. 저는 사실 융합수업 계획에 참여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여러분이 보시는 것처럼 이렇게 열정적인 선생님들과의 친분 때문에 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큰 기대없이 수업에 임했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들이 열심히 하고 좋은 발표를 해준 것에 너무 감사합니다. 모두 발표를 잘해주었습니다. 저는 아직 어린 학생들, 물론 여러분들은 제법 많이 자랐지만, 아직 어린 학생들은 '내'가 아닌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나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니까,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생각하고, 나부터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더 큰 꿈을 꾸고 더 많은 것을 바라느라, 자연에 대해서 환경에 대해서 신경을 쓰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환경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환경문제로 피해를 받는 사람들에 대해 공감하는 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야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늦은 때가 아닙니다. 


여러 학생들이 '분리배출'에 대해 이야기 한 만큼 그것과 관련해서 제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여러분에게 전해지는 다양한 자극을 재빠르게 '거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여러분 속에 들어오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많은 것들을 접하다 보면, 어떤 것들은 여러분 안에 깊이 쌓이고, 어떤 것들은 둥둥 떠다니다 사라질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들에 대해 궁리하고 탐구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이과스타일이다, 나는 문과 스타일이다 식으로 말하는 것처럼 자신을 성급하게 규정하지 마세요. 나는 이과생이니까, 라는 말은 대개는 '문과생다운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내가 못 할 때, 혹은 하지 않고 싶을 때 사용하는 '핑계'로만 쓰입니다. 

여러분의 기분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세요. 그 기분에 대해서 충분히 궁리하면 여러분은 소설가가 될 지도 모릅니다.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 탐구하면 발명가가 될지도 모릅니다.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좋아요. 분명 여러분은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될 겁니다. 

 

학생들이 만든 분리배출 안내지도

 

학생들의 발표 내용 

- 교실에서의 환경 개선 방법에 대한 발표 

- 투명한 패트병과 유색 페트병을 분리해주는 기계의 개발에 대한 발표 

- 올바른 분리배출 방법

- 교장선생님에게 보내는 기고문

- 광동제약에 보내는 기고문 : 비타 500 포장지 개선에 대한 의견 

- 탄소발자국의 정의와 의의 

 

얼렁뚱땅 보람느끼기 

 별 기대도 없이 수업에 참여했지만, 시간표대로 들어가는 수업과는 다른 뿌듯함이 있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학생은 '수업이 듣고 싶어서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이다. 하루 6, 7시간 수업을 앉아서 들어야 하는 학생들이 늘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상태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이 수업에 온 학생들은 수업을 듣고 싶어서 왔다. 생기부나 수행평가 점수 따위의 유인, 보상책을 주지 않아도 재미있어하며 활동에 참여한다. 

배움에 대한 재미를 떨어뜨리는 게 당장의 쓸모나 보상이 아닐까. 인간은 보상 때문에 일하지 않는 것처럼, 학생들도 보상 때문에 공부하지 않는다.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서 뛰어나려면, 자발성이 있어야 하고, 사회에 기여한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물리적 금전적 보상은 사람의 수행능력은 약간 높일 수 있지만, 창의적인 작업일 수록 그러한 보상은 순기능을 하지 못한다. 뭔가를 배우다가 재미있으면 "아, 이거 유튜브에 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려야지." 생각하다고, 누가 돈을 주며 시키면 갑자기 재미가 떨어질 것 같다. 

나는 그렇지 않지만, 같이 수업을 구안한 선생님들은 모두 학생들을 위해서 더 해줄 게 무엇인지 고민했다. 오늘 수업이 끝나지만, 어렵지 않은 사후 활동을 하나 더 해보는 것은 어떨까 또 궁리한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늘 '해야 되는 일'을 넘어선다. 교사가 해야 하는 일이란 '제 시간에 출근해서, 제때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 국가가 정한 성취기준에 맞춰 적절한 진도의 내용을 전달하고,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해야 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 학교는 더 나아질 리가 없고, 학생들이 더 행복해질 리가 없다. 학교와 사회는 교사가 어떻게 '해야 할 일' 이상의 것들을 하고 싶게 만들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학교와 사회가 어떤 보상을 준비해야 교사가 자신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학교에나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하고 싶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선생님들이 계시다. 그 분들이 '뛰어난 교사'라면, 학교의 목표는 '보통의 교사'도 '뛰어난 교사'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야 되지 않을까. 물리적 보상이란 효과도 없는데, 여전히 정부는 그런 보상 수준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아무튼 나는 오늘 얼렁뚱땅 보람을 느끼고, 주절주절 내 감상도 말해버렸다. 내가 고등학생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생각하고, 내가 고등학생 때 실천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실천하려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감사하다. 이제 저 학생들은 저런 태도를 유지하기만 해도 일단 '나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세대에 걸쳐 더 괜찮은 변화가 많아진다면, 분명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 사이에 내 역할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