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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오늘만 살아선 안된다

갑자기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생각하고 있지 않고 생각하게 되지도 않았을 사람. 이름을 잊고 그 얼굴을 잊어가던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는데, 누군가와 이야기하다가 결국 생각나는 사람.

몇 해 전 같이 근무했다가 올해 또 같이 근무하게 된 선생님이 있다. 지난 학교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우리는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꺼내고 얼굴도 떠올리고 그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했다. 누구는 이름만 누구는 성만 기억날 때도 있지만 결국 같이 있던 사람들을 많이 기억해 낸다.

그 선생님을 기억해내는 데는 시간이 더 걸렸다. 그 선생님과는 안 좋은 기억이 있다. 같은 업무 부서였다. 나는 배구하다가 새끼발가락이 부러지게 되었고 수술까지 하게 되어 학교를 비웠다. 그 선생님은 내가 했어야 할 일도 했을 것이다. 업무부장과 한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생각하지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려니 힘이 들고 짜증도 나고 화가 났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나에게 그 화를 풀어냈다. 발을 다진 건 내 의지가 아니고, 그러니 학교로 출근도 할 수도 없었다. 그 선생님이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대화가 길어져서 목발을 짚고 집 밖으로 나가서 그 선생님의 고성을 들은 기억이 선명하다. 그 이후에는 어땠을까. 이후에도 관계가 나아지지는 않았겠지.

그 선생님과 얼마나 더 근무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만큼 마주칠 일은 없었다.

헌데, 그 선생님이 암으로 몇 해 전에 죽었다고 한다. 나와 동갑이었다.

어느 해질녘

그 선생님에 대한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죽은 사람을 용서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매일이 반복될 것처럼 살아갈 수 있는 건 죽음에 대해 늘 걱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해 걱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매일 걱정해서는 매일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을 미워한다 생각한 적은 없지만, 죽음의 소식을 접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되었다. 아니 그저 다음 세상이 있다면 편안하기를, 마지막 떠나는 순간 편안했기를 바란다. 현재에도 과거의 어떤 순간의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는 시간의 문제일 수 있지만, 모두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과거도 미래와 같다.

우리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용서하고 그 사람의 안위를 빌 수 있다. 그래봐야 우리는 곧 죽어.라고 생각하면 누구든 가엾어진다. 그런 마음이 이번주 내내 계속되었다.

매일의 걱정은 대개 삶이 무한한 것처럼, 오늘이 영원히 반복될 것 같아서 그렇다. 오늘 나를 화나게 한 저 사람, 내일도 그 얼굴을 보아야 하고, 모레도 그 얼굴을 보아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 그렇다. 오늘 아침을 먹고 내일도 아침을 먹게 될 것처럼 일상이란 틀은 연약 한데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 안에서는 늘 공고하다.

죽음을 마주하고 사람들은 그러니 윤리와 도덕에 대해 생각했을 수 밖에 없겠다. 기준과 용서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겠다. 죽음 앞에 옳고 그름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늘 타협의 영역에 있을 수 있고, 내 안에서 평안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오늘 본 그 사람을 내일 또 보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10년 전 보았던 그 사람을 이제 영영 볼 수 없게 되는 일이 너무나 가능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