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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

언제 후회하는가?

원글 : 2018.2.22. 발행

되돌아 보고 후회하게 되는 시간이 있다. 최근 며칠을 보내면서 그런 마음이 또 들었고, 한번 정리해 봐야 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확신에 차서 신나게 떠드는 순간'을 경계한다. 경계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나도 모르게, 그런 상태에 빠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내용에 대해 내가 잘 알거나, 아주 편한 사람과 이야기 하거나, 듣는 사람이 나에게 의존할 때, 그런 상태에 빠지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확신에 차서 한 이야기라는 것도 하루만 지나고 나면, '그냥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는 데 하고 생각하게 된다. 무슨 말이든, 그 말은 반드시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정확한 내용을, 짧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이 없을 때 되묻고 확인하고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던가. 무엇이든 길어지는 것이라면 '확신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된다.

잘 알지 못하고, 잘 이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서 말이 장황하게 길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이때의 태도는 '확신에 찬' 것이라기 보다는 '미심쩍지만/ 자신은 없지만'에 가깝다. 이런 태도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니 새로운 생각으로 나를 이끌 수 있고, 더 큰 성장으로 나를 데려다 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설연휴 친구들을 만나서, 결혼이며, 육아며,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아주 신나게 한 판 떠들었다. 나는 너무 말을 많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말을 다 하고 난 후였다. 말이라는 것은 우습다. 아무리 두루뭉술하게 말하려고 해도, 결국 우리는 '어느 정도 의미의 한계를 명확히 가지는'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맛을 말하려고 하면, 달다고 말하든, 달짝지근하다고 말하든 선택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중간도 없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면, 전달할 수도 없다. '먹어봐.' 라고 이야기하는 수 밖에. 나의 생각와 내 감정 혹은 감상은 애초 '말'의 형태를 띄고 있지 않다. 가끔 딱 들어맞는 단어들과 쌍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절대 보면 안될 영화야.'(끝.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해) 라는 표현이 그런 것에 가까울 듯. 하지만, "왜 보면 안되는 지 좀 설명해봐." 라는 말에 대해서는 적절한 설명을 하기가 어렵다. 나는 사실보다 더 사실같은 문장을 지어낼 수 있는 소설가도 아니고, 세 줄로 삼십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인도 아니다. 늘상 생각과 언어 사이의 간극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서도 말을 하기 시작하면 성급하게 단어들을 선택해 버린다. 그리고 이내 그게 후회가 된다.

인터넷을 접하고 감상이랄까, 의견이랄까 이런 것을 쓰게 되더라도 '라고 생각합니다.', '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라며 없어도 될 것 같은 '조심하는 표현'을 흔히 썼다. 확신에 차서 말하는 사람을 보면, 그 확신 덕분에 그의 말에 확 쏠리다가도, 그 확신의 근원이 무엇인가 더 의심하게 된다. 우리가 어떤 내용을 자신있게 말할 때가 언제인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의 의심을 살 때, 그렇지 않은가. 여전히 모르는 게 많으면서도, 내가 아는 것보다 더 아는 것처럼 이야기할 때가 있지 않은가. 말하다가 내가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질문 받을 때, '모른다'는 말을 하기 보다, 앞선 얘기를 반복하며 질문을 피하거나 하지 않는가.

요즘 나는 '복직준비모드'다. 육아휴직 동안 학교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그 마음이 좀 다르다. 꼭 복직이 아니더라도, 새 학기를 맞이하면서의 마음은 늘상 이렇다. 되도록 교육이나 학습, 교실, 수업과 관련된 책을 읽고, 내 주변 모든 자극은 '학교'라는 틀을 질문으로 삼아, 답을 끌어 내본다.

학교에 가면 나는 어떤 부분에 대해서 '지나치게 확신'을 가지고 말하게 될까? 중요한 건, 우리의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상은 학회도 아니요, 학술 심포지움도 아니고, 토론의 장도 아니다. 내가 알고 믿는 게 있다면, 실천함으로만 보여줄 수 있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우선 '말로 털어놓고', 실천도 이어질 거라 상상한다. 말을 하고, 곧장 실천할 게 아니라면, 말이라도 참아야.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은 말이 가진 위험에 대한 조언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행한 행동도 주워담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헌데, 왜 '말'만을 집어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인가? 말은 참으로 많이 뱉어내기 쉬우니, 주우려고(추스르고 처리하려고) 해도 그것이 참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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