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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아빠 모시고 봉생병원


아빠와 병원에 갔다. 이제는 아빠와 병원에 같이 들어가면, 내가 아빠의 보호자다. 엄마 말에 따르면, 내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 아빠가 부쩍 활기찼다고 한다. 어제는 세 끼를 다 먹고, 깨끗이 씻고, 기분도 좋았다고.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고 나를 기다렸다고. 아빠가 약해지는 걸 옆에서 보며, 나는 마음이 안 좋다. 그저 계속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디 않나. 나는 이제 아빠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빠가 정말 밝고 강하게 생각되던 때가 있다. 나는 아빠의 멋진 모습을 보고, “우리 아빠는 몇 살일까? 나도 이빠 나이가 되면 저렇게 건강하고 듬직해질까?” 생각했다. 그때 아빠의 나이는 서른 여섯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아빠보다 나이가 많다. 나는 그때의 아빠같은 듬직함을 가지고 있을까. 아빠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시간이 우리를 녹슬게 하고, 우리는 불편함에 익숙해지면서도 더 많은 삶의 요령으로 일상을 살아나간다. 아빠가 약해지는 것이 견디기 힘든 이유를 내가 아빠를 ‘내 책임의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은 아닐까. 부모는 자식에게 효도의 대상이 아니다. 자식이 성장하면, 좀 더 ‘동등한’ 관계를 새로 맺을 수 있지 않은가. 자식의 효..란 결국 부모와의 새로운 관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게 아닐까. 나는 잘 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래도 잘 해보고 싶다.

한때 내 아빠는 내게 가장 멋지고 강한 사람이었다. 지금의 아빠에게도 그 옛날의 아빠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때 그 어린 아이도 내 안에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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