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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모교로 가서 가을 즐기기

갑자기 대학교가 보고 싶어서...

딸은 운동화를 안 신는 버릇을 해서, 주말에 외출할 때 운동화를 차에 가지고 갔는데, 그렇게 운동화는 엄마와 함께 엄마 일터로 가버렸다. 오늘은 유치원에서 전통놀이를 한다며 운동화를 신고 오라는데, 신을 수 있는 운동화가 하나 있는데, 딸은 이상하다며 신기를 거부. 그렇게 30분을 울다 짜증 내다가 결국 유치원으로 갔다. 갔다기보다는 데리고 갔다. 입구에서는 안아주기는 했지만, 나도 딸도 기분은 별로다. 신발만 있었던 게 아니다. 오늘 일정을 확인하고 어제 입었던 옷을 세탁해뒀어야 하는데, 어제 딸 새 구두를 살까 해서 나가느라 미처 빨래를 하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 빨래를 돌린 덕분에 세탁기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말려야 한다. 다리미를 꺼내서 다리기 시작한다. 뒤집어서 다리고 다시 뒤집어서 다리고. 소매며 목덜미는 특히 잘 안 마르며 축축하면 기분도 안 좋으니 더 꼼꼼히 말린다. 그렇게 보내고 나니 9시 50분. 원래 등원 시간은 9시 20분까지인데. 딸은 약간 지쳤을 테고 전통놀이는 잘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잘 다녀오길. 

어제까지는 수영을 가지 못해서 오늘은 수영을 가야지 했는데, 자유수영 하는 날 은근히 붐비는 물 안이 싫다. 그래서 자전거를 탈 준비를 했다. 

어제 공기를 집어넣었는데도 앞타이어 바람이 약간 빠져있다. 내 자전거 타이어는 바람이 적정 수준 차 있어야 안전하다. 손으로 꾸욱 눌러볼 때 단단하게 꼼짝도 안 해야 한다. 늙은 애호박처럼 돌은 아니되 웬만하면 칼도 안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어야 한다. 그렇게 앞바퀴에 바람을 채우고 가방에 아이패드, 액션 카메라, 외부 충전기, 이런저런 케이블, 에너지바를 채운다. 물통에 물이 남아 있는 지도 확인. 준비 끝. 가을볕에 목 뒤가 더 탈 것 같아 반다나도 둘러본다. 에어컨 빵빵한 곳이 있을 수도 있으니 바람막이는 늘 가방 속에 있다. 그렇게 나선다. 일단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나선다. 

남강까지 가는 길이 편하지 않다. 그나마 부드러운 길을 찾아서 남강을 향한다. 하늘은 ‘나 좀 쳐다보슈. 잠깐이면 지나갈 하늘이우’ 한다. 그 하늘 사진도 찍어주고, 브롬톤도 찍어준다. 나도 누가 좀 찍어주면 좋으련만. 

 

일단 자전거길을 따라 가는데, 새로 완공한 자전거길이 보인다. ‘집으로 올 때는 저 자전거길로 오리라.’ 새로난 길을 보니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벼랑 아래 길을 만들며 먼지를 날릴 때는 왜 저리 해야 하나 싶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반드시 저 벼랑 아래로 길을 새로 낼 필요는 없다. 이미 있는 길도 충분히 가좌동에서 충무공동까지를 연결해 주니까. 저렇게 새로 다리를 놓는 것보다 기존의 차도 중 일부를 자전거 도로로 만드는 게 비용도 적고 교통수단으로써의 효과는 더 커질 텐데 말이지. 아무튼 새로운 길로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다 보면 도로를 달리며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쓰려는 사람이 많아지겠지. 

출발하고 조금 지나자 어디로 갈까 생각한다. 도시달팽이로 갈까. 진주문고로 갈까.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줄 곳이 떠오른다. 글도 써야 하니 글을 쓸 수 있는 곳으로 가야지. 점심도 먹어야 하니, 점심 먹기 좋은 곳은 어떨까. 한 시간만 타고 가서, 한 시간 들여 돌아와야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경상대를 떠올렸다. 정말 가을 같은 곳은 대학교 캠퍼스일 것 같아서. 나무도 많고 조용하다. 사람들은 대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차는 적으니 대학 캠퍼스가 가장 공원에 가까운 게 아닌가. 

자전거길을 따라 엠비씨네를 향해 달려 연암공전 쪽으로 길을 건너 후문을 지나 경상대학교. 후문에 들어가다가 괜히 원룸들이 많은 골목을 돌아보는 데, 익숙한 풍경이지만, 또 낯설다. 골목의 모습은 그대로이지만, 건물들은 '제법 신식' 원룸 모양이다. 저렇게 만들어 놓고 세를 더 받겠지. 어려운 학생들의 삶은 더 어렵지 않을까. 

그렇게 옛 동네를 보다가(기숙사 생활도 하고 자취도 했으니 경상대 후문은 내 고향 중 하나가 되겠다) 눈에 띄는 간판. '이모네' 나와 친구가 하숙을 했었는데, 그 하숙집 주인 이모님이 시작한 가게였다. 아직도 그 이모님이 하고 있을까. 우리가 대학생 때 그분은 삼십 대 중후반 정도였다. 그때부터 20년이니 그분도 나이를 좀 드셨겠구나. 2002년쯤 개업을 하셨을 테니 꽤 오래 장사를 하셨구나. 오늘 점심은 저기다. 

하숙집 이모님은 음식 솜씨가 좋으셨다. 하숙이라는 게 뭐라 정의하기 힘든 비즈니스인 것 같다. 나와 내 친구가 두 군데 정도 하숙을 했던 것 같은데, 정말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장사' 같은 집도 있었다. 일단 그 할머니 이야기부터 하면, 반찬이 맛이 없지는 않았지만, 맛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먹을만하게 반찬을 내놓지도 않았다. 하숙'집'에서 먹는 밥이지만, '집밥'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집밥'이 무슨 '어머니의 정성' 따위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식판'을 벗어나야 하고, 반찬은 '접시'면 좋고, 적어도 '반찬통'에 담겨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장사집' 하숙집 할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하숙하는 학생들이 꽤 많기는 했다만, 아침에 일어나서 내려가 보면 계란 한 판 정도의 프라이가 아이들 샌드위치 놀이하듯 쌓여 있었다. 계란 프라이들이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고 그 맛은 눌리는 강도만큼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계란 프라이도 꼭 '하나만' 먹으라고 했다. 지금 나는 집에서 프라이를 해 먹으면 내 몫은 늘 두 개다. 그런다고 하숙 집에서 못 먹은 계란이 보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시 그 이모님으로. 음식 솜씨 좋은 이모님은 마음 씀씀이도 좋았다. 우리에게 제공해도 되지 않을 서비스를 제공했다. 늦잠 자고 일어나 세탁기에 빨래를 넣은 체 잊고 학교에 다녀오며 친구와 나는 '아, 빨래 다시 해야 되겠다. 하루 종일 세탁기에 있어서 쉰내 나겠다.' 했다. 한데, 빨래를 잘 마르고 잘 개어져 우리 방 앞에 놓여 있었다. 그런 게 여러 번이다. 우리는 '일부러' 세탁기만 돌리고 학교로 간 적은 없지만, 실수가 여러 번이었음에도 이모님은 군소리 없이 챙겨주셨다. 주말에도 밥을 직접 차려주실 때도 있었고, 아이가 소풍 가는 날이면 우리도 김밥을 충분히 얻어먹을 수 있었다. 늘 집에서 먹는 그런 평범한 반찬도 맛이 있었다. 오늘 점심은 '이모네'다. 

내가 기억하는 만큼 이모님이 나를 기억하실리는 없다. 정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경우가 많고, 팬은 스타를 기억해도 스타가 모든 팬을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 그 이모님이 아직도 식당을 하는 거라면 밥을 먹고 계산하고 나오면서 이야기를 해야지. 카운터를 지키지 않고 안에서 음식을 하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나를 못 알아보면 당황해하실지도 모른다. Whatever. 누군가 기억하는 한 그 관계는 유효하다. 기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재회의 기쁨도 누릴 수 있다. 

 

덧. 점심시간이 되어 이모네로 갔으나 만석. 아, 다음에 조금 이른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할 듯. 어쩔 수 없이 자전거 타며 오는 길에 콩나물 해장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