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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자전거

달팽이 피해서 자출하기 #브롬톤

에코바이크라는 앱으로 진주지역 자전거 출퇴근 챌린지가 진행 중이다. 이제 곧 한 달이 되어 가는데, 나는 초반에 출퇴근 시간 세팅을 잘못하는 바람에 출퇴근을 몇 번 빼먹었다. 중요한 기록은 출퇴근 횟수와 자전거로 달린거리. 자전거 운행한 거리는 1km는 타고라는 점수로 환산하는데, 출퇴근시 1km는 10타고로 보통의 1km당 1점보다 10배를 준다. 그러니 자신이 설정한 출퇴근 시간 동안 먼 거리를 가면 가장 큰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 참여해보니 상당한 거리를 달리는 분들이 많다.

 

에코바이크앱은 항상 위치 정보를 사용하도록 설정을 하라고 해서, 그냥 지우고 챌린지도 그만할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설정하지 않더라도 기록이 되기는 했다. 그런데, 스트라바와 비교하면, 꼭 2, 3km를 빼먹는다. 아무튼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 참여 중이다.

 

오늘은 아침에도, 오후에도 비예보가 있었다. 자전거 출퇴근을 하지 않을 이유는 늘 아주 쉽게 생긴다. 아내가 그냥 '비오는 데 차타고 가는 게 어때' 한 마디만 해도 정말 차를 타고 가고 싶은 기분이 된다. 그러니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자전거를 안 타고 가야 하는 이유가 남지 않도록 준비를 모두 해둬야 한다. 며칠 전부터 학교에서 씻기 시작했기 때문에, 학교에 도착해서 입을 옷도 미리 준비한다. 다행히 아침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비 예보가 있는 날은 자전거 타기가 더 좋다. 자전거 도로에 사람이 없어서. 내 출근길에는 오로지 지렁이, 달팽이만 보인다. 활찍 피었던 양귀비는 고개를 떨구고 빨간 닥종이 같던 꽃잎도 바닥에 떨구었다.

 

청소년들은 날씨에 아주 민감하고 비오고 흐린 날에는 힘을 못 쓴다. 비와 눈은 방학 때 몰아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니, 차라리 맑다가 갑자기 스콜처럼 퍼붓는 게 나으려나.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 날씨도 그리 되는 것은 시간 문제겠지만. 힘든 날은 간신히 흘러가는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퇴근 준비를 한다. 자전거 타고 퇴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저 출퇴근 시간에 운동하는 것보다 훨씬 풍성한 경험이다. 오늘은 비까지 오니 더 좋다.



학교를 나서는 데, 부슬부슬 비가 뿌린다. 반바지 위에 레인 재킷을 입고 헬멧까지 고쳐 쓴다. 바람이 비와 함께 슬슬 내 얼굴을 때리면 기분 최고. 페달을 열심히 밝아도 체온이 쉬이 오르지 않는다. 거의 집에 다 올 무렵 바닥을 유심히 보기 시작한다. 달팽이들이 나올 때가 되었다. 혹여나 실수로라도 밟으면 안되니 눈은 바닥에 고정이다.

 

달팽이와 자전거

 

 

이미 사람들의 발에 밟힌 건지, 산책 나온 개에게 밟힌 건지, 자전거에 밟힌 건지, 자기 집까지 으깨어져 버린 달팽이가 수두룩 한다. 나는 핸들을 더 움켜쥐고 시선을 자전거 앞 바퀴에 둔다. 이렇게 작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데도 내가 생명에 가할 수 있는 위해가 이렇게 크다. 자동차를 타면 네 바퀴에 밟히는 것들을 셀 수나 있을까. 고속도로를 다니면 차창에 부딪히는 벌레의 주검에도 무덤덤 해지지 않던가. 외부의 공간에서 내가 분리되는 순간, 나는 참으로 비공감적이 된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돌 하나 밟아도 꿈틀한다. 아기 달팽이를 밟는다고 해도 그 느낌이 내 몸 전체에 전해질 것이다. 그러니 조심조심 사뿐사뿐 걷듯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그리고 한 녀석을 만났다. 어디로 가는 걸까 잠시 쳐다보다가 사진으로 남긴다. 사진으로 보니, 이 녀석은 더 작아보이고, 내 작은 자전거는 너무나 커 보인다.

 

생각을 할 수 있을 만한 를 갖고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저 달팽이는 반드시 오늘 해지기 전에 닿아야 하는 곳이 있는 것처럼 나아간다. 내가 퇴근하고 집으로 곧장 향하듯, 달팽이도 어딘가로 곧장 향한다. 거대한 발, 거대한 바퀴가 지나가는 데, 피할 재간이 없고, 그저 나아간다. 이런 작은 생명에 죽고 사는 데, 자연의 섭리 운운한다는 게 우습다. 전 지구에 온갖 해악은 다 끼치는 우리를 생각하면, 자연의 섭리를 운운할 게 아니라, 눈에 띄는 무엇이든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

 

내일 아침도 이 길로 출근한다. 비가 그치고 난 아침이니 달팽이들이 더 나와있지 않을까. 내일도 일단 요리조리 피해가야지. 작은 무엇이라도 떨어져 있다면, 모두 달팽이인냥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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