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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과 인간의 허파

다시 종의 기원

어차피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지난번 독서 모임에서 '종의 기원'은 딱 반만 다룰 수 있었다. 한 달의 시간이 있었지만 간신히 반을 읽어갈 수 있었다. 독서 모임 멤버들이 있는 채팅방에서는 한번에 끝내겠다 호언했었는데, 그렇게 끝내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 달 모임은 '종의 기원'의 남은 반이다.

'인간의 조건'을 읽다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강독'을 읽으니 이제는 어떤 책이고 못 읽어 나갈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읽다 지쳐 쓰러지더라도 장벽 같은 단어에 겁먹지는 않는다. 그저 이해 못하고 넘어가는 문장이 있을 뿐이다. 내 부족한 지력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방법은 하나 뿐이다. 읽으면서 내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 조금 확인하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얼마나 되는 지 조금 가늠해 볼 뿐이다.

종의 기원

인간의 허파에 대한 다윈의 생각

오늘 스무 장을 읽는데, 인간 허파에 대한 다윈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다윈은 인간의 폐가 물고기의 부레 혹은 그것보다 오래된 무언가로부터 시작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 근거로 무엇이든 우리 목을 지나는 것이 기도에도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구조를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릎을 탁 칠 만 하지 않은가. 종의 기원을 읽어보기 전에도 다윈이 애초 책에서 미리 반박하고자 했던 거의 도약적이라 할 만한 변화는 왜 증거가 남아 있지 않은가? 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는 있었다. 아직 종의 기원을 다 읽지 못했지만 인간의 생각의 힘에 다시금 감탄한다.

상상과 직관

다윈은 수많은 비둘기와 양을 직접 키우고 수집하고 자료를 구해서 읽었다. 읽은 자료는 당연히 비둘기와 양에 대한 것으로 국한하지 않았다. 인간의 경험은 편향되기 쉬우나 강렬하다. 경험의 일반화가 가능하려면 다른 사람의 더 넓은 경험과 비교해 보는 게 좋겠다. 그러니 책이나 논문 등 더 많은 데이터를 접하는 건 사고*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다윈의 서술을 보건데, 인간이 *제대로 사고 하려면, 자신의 경험에 의지는 하되 더 일반적인 지식들에 대한 탐색을 계속 해야 한다.

우리는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만 생각한다고 여기겠지만, 생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니 깨어 있는 동안에만 어떤 것의 답을 구하거나 생각의 진보를 구한다는 건 머리의 반도 못 쓰는 게 아닐까.

다윈은 오로지 진화라는 한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 관찰하고 기록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록을 읽었다. 그가 이룬 성취란 인간 지성의 가능을 보여준 게 아닐까.

지성의 글

비록 번역된 것이기는 하나 다윈의 글을 읽고, 한나 아렌트의 글을 읽고, 하이데어에 대해 설명을 읽는 일이 무척 즐겁다. 시대를 관통하여 같은 인간 종의 뛰어난 지성이 남긴 생각의 자취를 따라 갈 수 있다는 건 오로지 언어 덕분이다. 그래서 이런 글을 읽는 시간은 감사하다. 위대한 지성들만이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 알게 되는 얕은 지식은 어쩌면 거의 전혀 내 지평을 넓혀주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저 삶을 뛰어 들기 전 '지도 한 장'을 건내 받은 것에 다름없지 않을까.

나에게도 직관의 순간이 올까. 그것을 글로 남겨 누군가에게 또 다른 힌트를 제공할 수 있는 순간이 올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 순간, 이해를 위해 발버둥 쳤다는 점은 기록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