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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 수능전날인 오늘

아침부터 어수선하다. 내일이 수능이고, 오늘은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날이다. 지난주부터 책상의 낙서를 지우고, 흔들리는 책상들은 테이프를 발라가며 흔들리지 않도록 만들어뒀다. 사물함도 되도록 비우라고 말해뒀었고, 사물함 위도 정리했다. 사물함은 어제 정리를 일단 다 했고, 오늘은 책상배치도 하고, 반사될 만한 것들은 모두 가리고 수험번호도 붙여야 했다.

1교시가 지나가고, 아이들은 다시 청소한다. 어제 2시간의 청소 시간 동안 구석구석 쓸고 닦으면서 그간 청소시간에는 무얼 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들추면 들추는 곳마다 먼지가 스멀스멀 나왔다. 서랍 안을 모두 비우고, 다시 한 번 학생들 책상 위를 살피고 흔들리지는 않는지 살핀다. 타요 스티커가 붙어 있는 책상도 있고, 이름 스티커가 붙어 있는 책상도 있다. 스티커를 떼어 내고, 스티커 제거제를 뿌리고 낙서를 마저 지운다. 진한 냄새가 난다.

28개의 책상과 걸상을 남기고 가장 못난 책상과 의자들은 복도로 빼낸다. 그렇다고 28개는 새것처럼 깨끗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양호한 것들이다. 교실에 그냥 서서 별 할 일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은 일단 복도로 보낸다. 적극적으로 일을 도와주는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지시를 한 번에 내린다. 책상에 직접 앉아보고, 의자가 너무 낮은 게 없는지 살핀다. 크게 쓰인 고사장 번호를 건물 외벽 쪽 창문에 붙인다. 교실에 있는 티브이는 종이로 가리고, 컴퓨터 책상도 모두 가린다. 특히 학생들과 마주 보고 있는 컴퓨터 책상의 면은 새카맣게 낙서가 되어 있다. 그 나무판도 모두 가린다. 구속에 자리 잡고 있던 사용하지 않는 대걸레 자루와 물통은 옆 상담실로 옮긴다. 이미 상담실에는 학생들의 책이며 교실에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이 그득하다. 또 교실을 한번 쓸고, 필요 없는 부착물들은 없는지 다시 살펴본다. 받아온 수험생 배치표를 보고, 복도 쪽 책상과 걸상부터 정리한다. 그 책걸상을 기준으로 다른 책걸상의 줄도 맞춘다. 위치를 바꾸면 괜찮던 책상이 흔들리기도 한다. 그런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보기도 하고, 또 테이프를 덧붙이기도 한다. 교실에 쓰레기통은 하나만 남긴다.

수험표를 붙이는 데는 두 학생을 불렀다. 나는 수험번호를 부르고, 한 명은 수험번호 스티커를 떼서 주고, 다른 한 명은 스티커를 붙인다. 홀수 다음 짝수, 그다음 홀수. 혹시라도 틀리지 않도록 붙인 번호도 다시 확인한다. 한 명이 14명 책상에 수험표를 붙이고, 다른 한 명이 나머지 책상에 수험표를 붙였다. 교실을 정리한 아이들은 ‘나도 긴장돼’를 연발한다. 그래, 2년 후의 나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지니 모두 긴장이 되리라.

교실을 정리하고, 모든 학년이 강당에 모여 장도식을 준비한다. 내가 수능칠 때는 장도식 따위는 없었는데, 그 유례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하다가 학생들이 준비한 것을 본다. 대부분 장도식의 마지막은 고 3학생들이 양쪽으로 죽 늘어선 후배들의 박수를 받으며 학교를 나서는 것이다. 과연 힘이 될지. 그래도 모든 고3들은 오늘만큼은 전 국민의 응원을 받는다. 모두 시험을 잘 친다는 게 불가능하지만, 모두 좋은 성적을 받는다는 게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응원받아 마땅한 날이긴 하다.

수능시험감독관 사전 연수에 가기 전에 시간이 있어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간다. 며칠 기침을 했는데, 아침에는 쉴 사이 없이 기침하더란다. 병원에 가보니, 목도 괜찮고, 귀도 코도 괜찮고 기침만 조금 있단다. 그렇게 병원에 갔다 오니 기침을 안 한다. 약은 오늘 먹지 않기로 한다. 내일도 좋지 않으면 내일부터 먹는 것으로. 감기증상으로 병원에 가면 항생제를 처방받아 오는 게 영 께름칙한 모양이다. 딸이랑 놀다가 아들이랑 놀다가 감독관 연수를 받으러 간다.

좁은 교실에 80명 정도는 되어 보이는 선생님들이 빼곡히 앉아 있다. 고사장 총 책임을 지는 그 학교 교감, 교장, 교육청에서 파견온 장학사도 앉아 있다. 학교의 교무부장은 수능시험 감독에 대한 유의사항을 전달하기 시작한다. 어느 것 하나 달라진 것은 없다. 수능감독시험 연수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은 늘 비슷하다.

- 사안이 발생할 경우, 개인이 판단하지 말고 안내서대로 하라. 혼동되면 무조건 시험본부로 알려라. - 감독관의 실수나 부주의로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주의하라. - 부정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학교에는 ‘잘해봐야 본전’인 게 많다. 이는 학교 문화가 어떠한지 잘 드러낸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것들은 ‘사고 없이’ 이행하는 데 많은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능감독은 선생님들의 일 년 업무 중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다. 수능시험은 제2외국어 응시자가 있는 학교의 경우 총 5교시까지 진행된다. 보통 한번 감독을 들어가면 100분 이상 서 있어야 한다. 정감독은 학생들 수험표, 신분증 확인과 날인을 위해 교실 주위를 순외하지만, 부감독은 시간 대부분을 교실 뒤편에서 서 있어야 한다. 학생들의 시험에 방해되지 않도록 너무 학생 가까이 서 있지도 않는다. 당연히 움직이면 안 된다. 1, 2 한 교실에 2명씩 감독이 들어간다. 하지만, 4교시에는 3명이 들어간다. 대부분의 감독관은 4교시에는 무조건 교실로 투입된다. 2교시 감독을 하는 감독관은 점심 시간이 40분 정도가 된다. 끝나자마자 답안지와 문제지 수량을 확인하고 나면 짧은 시간 밥을 먹고, 3교시 영어시험 감독에 들어가야 한다.

가만히 서 있기는 하지만,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된다. 정감독이든 부감독이든 해야 할 일들이 정해져 있다. 거의 모든 내용이 중앙방송을 통해 안내된다. 거의 안내방송에 맞추어 시험을 진행하면 되지만 그 순서를 숙지하고 있어야 시험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시험지를 배부하라’라는 방송은 나오지만, ‘시험지를 봉투에서 꺼내라.’는 방송은 나오지 않으니까.

40페이지 정도 되는 감독관 안내서를 거의 한 줄 한 줄 읽으면서 진행되는 연수가 끝난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 동료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오늘 하루보다 내일이 더 길 것 같다. 감독을 하면서도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도록 기도할 것이다. 국어 시험의 난이도는 어떤지, 수학시험은 어떤지, 특히 영어시험의 난이도는 어떤지 바짝 신경을 쓸 것이다. 조는 학생을 보면 내 마음이 더 조마조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