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외면일기

2023년 회고

토로록알밥 2023. 12. 3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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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회의에 앞서 올 한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해봤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사진을 살펴보면서 나에게는 또 어떤 일이 있었나 정리했다. 적어도 사진 속의 나는 가족과 함께 무언가를 하거나, 학교의 일 때문에 어떤 일을 하거나, 나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집, 일터, 제3의 장소라는 분류를 통해서 파일 정리에도 활용하고 있다. 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한 해를 정리해보는 게 좋겠다.

키보드를 꺼내어 이 글을 쓰기 전에 우선 일기에 써봤다. 한 해의 마지막 일기장을 채우려고 하니, 일단 아쉬움부터 밀려온다. 더 했어야 하는 일, 더 잘 했어야 하는 일을 정확히 떠올릴 수 없으면서도 아쉬움이 가장 큰 정서로 남았다. 하지만 한 해를 마무리 하는데, 아쉬움을 가지며 나를 채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잘 한 일들을 칭찬하며 마무리하는 게 더 좋겠다. 나는 어떤 일을 마치고 나면 당연히 아쉽고 미흡한 부분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니, 굳이 연말에도 그렇게 아쉬움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나를 앞으로 끌고 나가는 힘은 과거의 나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앞으로의 나에 대한 기대일 게 분명하다. 아무도 칭찬하는 이 없어도 나는 나를 조용히 불러서 토닥거려줄 필요가 있다.

가족

적어도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았다. 이는 주중 학교에서 일을 더 열심히 했거나 더 집중해서 했기 때문이겠다. 2022년도와 비교해서도 가족과 뜻깊은 시간을 많이 보냈다. 올해 한 일 중 가장 잘 한 일은 두 가지다.

  • 미국 가족 여행
  • 가족 회의 다시 시작

오늘 올해 마지막 가족 회의를 했다. 가족들은 미국여행 다녀온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딸은 미국가서 슬라임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고, 아들은 그냥 미국이 좋았다고 한다. 여행가기 전에는 미국행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지만 미국에 가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다. 짐꾼도 되고 길찾기도 되고. 우리 가족은 같이 긴 여행을 가서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잘 확인했다. 한국에서 돌아다닐 때와는 또 다른 협동력을 보여줬다. 미국행 티켓을 끊고 나서는 걱정이 많이 됐었는데(일단 돈이 너무 많이 들들서), 여행을 가서는 늘 좋았던 순간이 더 많았다. 우리 가족은 서로 참 잘 어울리는 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좋았다. 미국 여행의 기억은 모두 기록으로 남겼고 소중한 추억은 그림으로도 그렸다. 그 그림들은 스티커로 만들었고, 기록은 다시 모아 정리 중이다. 모두 정리하지는 못했지만, 정리해서 어떻게든 하나의 완결된 저작으로 펴낼 생각이다.

가족회의는 아이들이 더 어릴 적에 시작했다가 중단하고 있었다. 이제 아들이 더 자라면서 가족회의를 통해서 더 많은 의사결정을 하고 어른들의 이야기도 아이들과 공유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을 제외하고는 가족회의에 대한 평이 좋았다. 아내는 잔소리가 될 수도 있는 부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다고 했고, 아들은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앉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가끔 회의 자리에서 아이들이 장난을 칠 때가 있지만, 편안하고 밝은 분위기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싶다. 오늘 회의를 통해서 가족회의는 2주에 한번 일요일 밤 8시에 하기로 했다. 의사 진행은 아내와 나, 아들이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다.

가족회의로 가족 간의 관계가 당장 좋아진다거나 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이 모두 공동체의 일원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기회가 있다는 건 너무나가치로운 일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가족회의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가족들의 뜨뜨미지근한 반응을 보면서도 가족회의를 다시 연 나를 칭찬한다.

일터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1년차를 시작했고 교육과정 2년차를 맞이했다. 학생들의 이동 수업 때문에 학기초반은 준비가 덜 되어 있었고 정신없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곧 안정이 되었다. 내 힘으로만 된 것은 아니지만, 내 힘도 큰 기능을 했다.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했고 회의 중 다른 의견에 대해서도 화를 낸 적이 없다. 어떤 선생님의 어떤 발언에 실망할 때도 있었지만 내가 섣불리 결정하는 우는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학생들에게 최선이 되는 교육과정 편성을 위해서 나는 열심히 공부했고, 필요하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받아서 교육과정을 구성했다.

부서원이 바뀌었지만 구성은 지난해 보다 더 좋았다. 나도 다른 부서 선생님들의 업무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고 그래서 부서 전체의 업무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적었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다른 일도 도와주려고 한 부서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다. 어떻게 다른 선생님들을 리드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은 계속하고 있다.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떤 원칙을 가지고 내가 일을 하는 지 공유하고, 선생님들의 사정에 귀 기울이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다. 적어도 부서 선생님들의 말씀을 누구의 이야기보다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내 일이 아니더라도 시간만 허락한다면 학교의 여러가지 행사에 참여하고 마치 내 일인 것처럼 좋은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남겼다. 내 사진첩 사진들을 보면 학교 홈페이지 같다. 학교 행사의 대부분이 내 휴대폰 사진에 담겨 있다.

학생들에게는 먼저 인사했고 선생님들에게도 먼저 다가갔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학교 주변을 걸을 때는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비어 있는 교실의 불을 끄고 냉난방기 전원도 껐다. 학교 행정이나 회계 업무에 대한 이해도 이제 높아져서 품의 기안을 하면서나 예산 편성, 추경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끼거나 시한을 넘긴 적이 없다. 공문은 모두 제때 처리했고, 중대한 실수를 한 적도 없다.

고등학교 3학년 수업은 학생들이 들으려 하지 않아서 힘들기는 했지만, 듣는 학생이 있는 동안은 수업을 했다. 1학기 때 영어권 문화 과목의 경우, 전체 학생의 교과세특을 내가 기록했다. 2학기에는 1학년 학생들과 수업을 시작했고, Live Well 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문과 활동을 선택해서 수업을 진행했다. 경남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수업나눔 교사제에 참여하여 수업 나눔도 1회 했다. 수업 나눔에 오신 선생님들은 사후 평가에서 수업 방법이나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크게 칭찬하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힘이 되었다.

제 3의 공간

제 3의 공간에서 중요한 일은 책읽기와 책모임, 자전거 타기 정도가 되겠다.

학기 초반에는 책읽기가 힘들지만 #먼북소리 운여도 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한 달에 한 권은 책을 읽었다. 읽은 책 기록을 하지 못해서 정확히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올해에도 40권 정도의 책은 읽은 것 같다. 독서 모임을 하고나면 책과 모임에 대해 후기를 반드시 남기려고 했다. 그런 글 덕분에 독서 모임에 새로운 멤버가 오기도 했다. 먼북소리 모임은 이제 고전을 향해 가고 있으면 그게 옳기도 하고 바른 방향이라 생각한다. 종의 기원을 시작으로 고전 읽기를 시작한다. 멤버분들이 계속해서 모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나는 반드시 모임에 나간다.

아침에는 오트밀로 식사를 하고 있으며 덕분에 체중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고 오트밀, 두유로 하는 식사라 환경에 미치는 임팩트도 적다. 분명 식비도 줄었을 것이다. 공복에 자전거로 출근하고 밤새 냉장고에 뒀던 오트밀을 학교에 가서 먹는다. 아침에 자극이 거의 없는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자극적인 음식에 대한 욕구가 더 줄어 들었다.

자전거 출퇴근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했다. 장마철이나 출장이 너무 많은 때를 빼고는 늘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다. 방학 때 자전거 출퇴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까지는 잘 하고 있다. 3년째 자전거 출퇴근을 하다보니 이제 어떻게 입고 어떻게 자전거를 세팅해야 할지는 완전히 정해졌다. 예전처럼 필요한 걸 집에 두고 출발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다. 계속해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년에도 이 학교에 있게 되니 자전거 출퇴근을 계속 할 수 있겠다.

커피는 적당히 마시고 있고, 올해에는 자전거를 타고 혼자 커피를 내려 마시는 여유 있는 시간을 몇 번 가졌다. 간단히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세팅도 완성했으니 언제든 기회만 되면 커피를 마시러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다. 자전거를 타는 만큼 차를 적게 탔기 때문에 보험료도 15만원 정도 돌려받았다.

한 해를 정리하며

늘 사람을 괴롭히는 게 다른 인간 혹은 관계인 경우가 많아서 올해에도 그런 이슈가 있었다. 하지만 그 부분은 Someday is Today를 읽으면서 얻게 된 전략으로 좀 해결했다. 학교에 근무하면 늘 충분한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학교 외부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욕구가 정말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1월 교원대에서 연수를 하면서 좋은 선생님들을 아주 많이 만났다. 그 선생님들과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너무나 기쁜 일이다. 나는 의미있는 일은 의미있게 하고 싶다.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일에는 의미를 담아서 하고 싶다. 그러지 못하면 일에 의해 내가 소외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과 나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으며 한 해를 보냈다. 나의 삶은 언제나 나의 성장에 기여 하는 방향으로 살아가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전문성이 높아져야 하지 않을까.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자신을 더 잘 성장시킬 수 있어야 매년 비슷한 문제로 힘들지 않겠다. 내년의 나는 또 내년의 문제들로 바쁠 수 있다. 하지만, 올해의 내가 열렬히 응원을 보낸다. 올해 만큼 해낸 것도 대단하다. 내년이 혹시 올해만 못하다 하더라도 절대 나를 나무라지 말자.

한나 아렌트는 한 사람의 탄생과 함께 새로운 시작이 탄생한다고 했다. 내가 태어남으로써 나로 비롯되는 새로운 시작이 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그저 시작하는 것으로 내 삶은 이미 이루어진다. 내년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하는 나를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