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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두기에는 시집이 최고

타츠루 2023. 7. 1. 20:47

부부화장실 변기 위에는 작은 공간이 있고 거기에는 책이 일곱 권 꽂혀 있다. 나는 앉아서 볼 일을 봐야 하면 책을 하나 빼드는 데, 최근에는 시집을 빼들고 있다. 그전에는 '새'에 대한 책이었다. '새'에 대한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자꾸 시집을 빼들고 읽고 있다. 화장실에 두기에는 시집이 최고다.

나는 시를 잘 모르고, 읽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화장실에 두고 같은 시집을 읽고 또 읽다 보니, 좋다. 일단 짧게 앉은 동안 하나의 완결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오래 앉아 있는 스타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화장실에까지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시집은 길어도 두 세 페이지다. 내가 앉아 있는 시간은 길어도 두 세 페이지다.

한 시인의 시집을 다 읽었고 이제 어던 시집을 넣어둘까 물색 중이었다. 어제 진주문고에 갔고 서점원들이 읽고 추천하는 책 중에 황인찬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시집이 있었다. 작가 사인까지 들어 있으니 소장 가치도 충분하다. (단, 나는 이 시인이 유명한지 아닌지 이게 첫 번째 시집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집을 꺼내어 좀 읽다가 마음에 들었다.

황인찬 시집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This Is Just To Say 의 일부를 갖다 쓴 부분이 좋았다.

과육이 희고 물이 많은 배였습니다 식탁 위에 올라와 있었어요 누가 깎아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먹었습니다 무슨 외국 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메모를 따로 남겨두지는 않았습니다 빈 접시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흰 배처럼 텅 비어>

 

 

화장실용으로 가지고 왔으면 바로 화장실에 두어야 하는데, 그래도 붙들고 읽게 되었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했던 것 같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많이 생각하고, 가끔 유령을 보는 것 같다. 대강 한 번 읽었으니, 화장실에 두면 더 많이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