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외면일기

동생의 아이스크림 #글요일

토로록알밥 2019. 6. 10. 10:19

 

아이스크림 


다 못 먹겠다며 내게 아이스크림을 줬다가 내가 먹기 시작하니 다시 달라고 했다. 


분명 동생은 나에게 자기가 먹던 아이스크림을 준다고 했다. 나는 재차 물었다. “다시 달라고 하지 않을 거지?” 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나는 동생에게서 무언가를 받은 적이 여러 번 있고, 또 그만큼 다시 돌려준 적이 있다. 형제란 다른 형제가 가지고 있는 건 모두 갖고 싶어 하는 사람 아닌가. 나는 누나처럼 여자가 되고 싶다거나 중학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누나가 갖고 있는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작은 다락방, 모자 모두 갖고 싶었다. 동생도 그러했으리라. 하지만, 동생은 자주 나에게 먹을 것을 줬던 것 같다. 나보다 훨씬 대식가이지만, 그래도 나보다 세 살 어리니 마음먹고 먹으면 내가 더 잘 먹지 않았을까. 


그날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다. 나는 진즉에 내 아이스크림을 다 먹었다. 누가바나 서주 아이스 정도가 아니었을까. 나는 아이스크림이 녹는 게 싫었고 그게 손에 묻는 건 더 싫었다. 음식이 손에 닿는 것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치킨은 양손으로 먹는 게 맛있고, 피자도 손으로 쥐고 잘 먹는다. 하지만, 먹다가 손을 타고 흐르는 음식은 싫다. 어릴 때부터 토마토 먹는 걸 싫어했다. 토마토를 싫어한게 아니다. 엄마는 큼직한 토마토의 꼭지를 따고 큼지막하게 편으로 썰어주거나, 하나를 그냥 주고 먹으라고 했다. 어른에게도 어린이에게도 토마토는 먹기 쉬운 음식이 아니다. 특히, 과일로는. 토마토를 쥐고 한 입 베어 물면 안에서 과즙이 나온다. 입으로 아무리 호로록 거리며 먹어도 그 과즙이 흐르는 걸 어찌할 수가 없다. 한 입 베면 속을 다 들어내는 햄버거는 그래서 종이에 싸서 먹지 않나? 토마토도 햄버거 같이 코팅된 종이에 싸 먹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 아이스크림을 일찌감치 끝내고, 아이스크림 막대기도 깔끔하게 앞뒤로 핥아서 정리한다. 동생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번 녹기시작한 아이스크림은 용암이 흘러내리듯 빠르고 뜨거운 속도로 그 아래에 있는 녀석들을 녹이며 내려온다. 동생은 나에게 “오빠 먹어라”했다. 나는 분명 그렇게 들었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진짜?, 나중에 다시 달라고 하지 마라!” 동생은 아랫입술 아래 묻은 아이스크림을 손등으로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장 많이 녹아서 겉을 타고 내리는 녀석들을 한 입으로 쓸어 담았다. 그렇게 한 꺼풀 벗겨 먹고 나면 안에는 그래도 그나마 덜 녹은 아이스크림이 형체를 유지하고 있다. 그때 동생이 “아이스크림 내 거야 줘.” 한다.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증기가 차오른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방금 니가 한 말을 기억 못 하는 거냐?’라는 표정으로 동생을 노려본다. 동생은 기다리지 않고 엄마에게 달려간다. 


“엄마, 오빠야가 내 아이스크림 안줘.” 4살쯤이었을 동생의 가장 든든한 아군은 엄마였다. 나는 동생이 엄마한테 가자마자 서러워졌다. 엄마는 동생에게 그 아이스크림을 주라고 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나름 설명은 했다. 분명히 “정화가 나한테 줬단 말이야. 다시 안 뺐아간다고 했단 말이야.” 엄마는 “동생이 몰라서 그랬지.” 했다. 다 아는 것 같은데, 다 알고 말하는 것 같은데 왜 엄마는 동생이 불리할 때에만 동생말을 믿어주나. 나는 아이스크림을 뺏겼다. 처음부터 내 것 같았던 아이스크림을 뺏겼다. 다시는 동생 말을 믿지 않아야지 속으로 다짐했다. 동생을 노려보는 데, 아주 뜨겁게 노려봐서 저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버리거나, 어디서 단내를 맡고 벌이 날아와 저 얄미운 입술을 쏘아 버리면 좋겠다 생각했다. 물론 벌이 정말 동생을 쏘면 동생이 또 좀 불쌍하겠구나 생각도 했다. 그럼 벌이 와서 겁이라도 주면 마음이 좀 나아졌을까. 
나는 동생이 뭘 준다는 말은 절대 믿지 않아야지 다짐했다. 7살의 다짐도 단단하다. 평생 절대 믿지 않아야지 다짐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동생을 꼬득였을 지도 모른다. 내 것을 다 먹고, 동생에게 “다 녹는다. 어떻게.... 너 그거 다 못 먹겠다. 아까우니까 오빠 주라. 다음에 오빠가 과자 생기면 주께.”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은 전혀 없지만. 나의 기억은 내 편이라 다행이다. 잠시 동생을 미워했으니 기분이 풀렸다. 


하지만 누군가 우리 동생을 구슬려 동생 먹을 몫을 빼앗아 갔다면 나는 엄마가 된 듯, 아빠가 된 듯 싸웠을 지도 모른다. 나는 동생 편이니까. 내 편이 아닐 때 빼고 늘 동생은 내 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