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외면일기

왜 아이에게는 책을 일주일에 한 권만 사줬을까?

토로록알밥 2019. 5. 31. 22:10


아이는 크고 집은 짐은 넘친다. 아내는 자주 필요 없는 것들, 쓰임이 다한 것들을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한다. 그런데도 늘어난다. 아이들의 책만은 계속 늘고 있다. 둘째는 첫째가 읽던 것들을 받아 읽으니 늘지 않지만 첫째의 책은 조금씩 늘고 있다. 게다가 나의 책들은 더 빠르게 늘고 있다. 집안 구석구석으로 나의 책들은 자리를 옮겨갔고 어느 날 아내는 내 책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넣었다. 책을 이중으로 꽂아 안에 들어가 앉은 책들은 도저히 눈에 띄지 않았다. 문으로 닫아버려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곳으로 책을 밀어 넣기도 했다. 아이들의 책은 보여야 읽으니. 나는 내 안타까운 책들을 구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다. 아들 방에 피아노를 넣게 되면서 집안의 책들의 위치를 바꿔야 했다. 더 이상 밀어 넣을 수가 없어서 아이들의 책도 소파 위, 티브이 아래, 바닥에 늘어서기 시작했다. 책장은 가득 차 있으면 한번 뺀 책이 다시 제자리로 가기 힘들다. 여유가 없으면 그저 어디든 펑퍼짐한 곳에 자리를 잡는 게 당연하다. 


이케아에서 빌리 책장을 주문했다. 폭 80cm미터짜리 6단 책꽂이. 아이들의 책은 거실에 두고 책장 아래 달려 있던 문도 뜯고, 책장 선반의 높이도 조절해서 기다란 그림책도 제대로 자리를 잡게 했다. 그리고 내 책을 빼기 시작했다. 당분간 읽지 않을 책, 버릴까 말까 고민하는 책들은 거실 책장 제일 위에 두었다. 다른 책들은 침대가 있는 침실 방으로 옮겨간다. 책장은 가슴을 펴고 책을 맞이한다. 작은 사이즈는 위 칸을 차지하고 아래에는 묵직한 책. 영어, 영어교육, 영문법책은 모아 두고, 다른 책들도 적당히 정리한다. 그 옆에서 자리 잡고 있던 책장의 책도 다시 정리한다. 선반과 선반 사이 책들을 눕혀서 빈칸을 모두 채운다. 아, 빌리가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 싶다. 그래도 침대방으로 들어가면 나의 책으로 가득하다. 


아들한테 아빠의 노동의 결과를 보여주고 어떠냐 물었다. 그런데 아들이 허를 찌른다. 


아들: "아빠 책이 너무 많다. 그런데, 아빠는 왜 책을 사서 한번 밖에 안 읽어?"
나 : "아빠도, 두번 읽는 책도 있어. 물론 대부분 한 번 읽지."
아들 : "왜? 너무 아깝다. 돈 낭비 아니야?"
나 : (책을 한 권 꺼내어 보여주며) "봐봐, 여기 아빠가 밑줄 긋고 메모한 게 보이지? 아빠가 생각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할 때, 이렇게 이 부분을 찾아서 읽고 다시 생각하는 거야. 물론 책 전체를 여러 번 읽지는 않지만, 언제든 꺼내보는 거지. 책이 아빠가 기억할 걸 대신 기억하고 있는 거야. 그러고 보니, 아들은 책을 엄청 여러 번 읽는구나. 아빠 책은 그림은 없고 글자가 많아서 사실 여러 번 읽는데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읽고 싶은 책이 많으니까 한 번 밖에 못 읽고 지나가는 거지." 
아들 : (고개를 끄덕끄덕)


이미 며칠 전 나눈 대화인데, 오늘 나는 왜 나는 아이에게 책을 사줄 때 깐깐하게 구는가 생각했다. 대략 2주에 한번은 진주문고로 간다. 아들에게 허용한 책은 한 권이다. 아들은 갈 때마다 2권을 사달라고 사정한다.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은 '마법천자문', 애착을 가지고 모아둔 책은 '마인크래프트' 건축에 대한 것들이다. 나는 늘 한 번에 세네 권씩 사면서 아들에게는 딱 2권씩만 사라고 한다. 왜 그런가? 
아들의 선택을 믿지 못해서 일까? 아이가 보는 책을 저평가 해서 일까? 


아들은 한때 '곤충 배틀', '무시무시한 곤충' 같은 제목의 책을 사모았다. 대개 한 두 번 보고 더 보지 않았는데, 무서운 것, 음습한 것, 가상의 대결 등에 관심이 있어 그랬을 수도 있다. 왜 그런 책이 재미있느냐 물으면 답을 못하고는 했으니, 그 책에 끌리는 이유는 아들도 정확히 모를 수도 있다. 그런 책을 사주면서도 '저런 책 사두고, 한 번도 읽지 않고 버리는 거 아냐?'라고 의심했지 싶다. 책을 사서 안 읽게 되는 경우는 내가 더 많다. 내가 더 많이 산다. 책을 사주는 사람이 나고, 돈을 버는 사람이 나와 아내라 무엇을 사고 말지는 부모가 결정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 이유가 아이의 선택을 믿지 못해서라면 합당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 책을 선택하는 과정에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골라보고 맛보고 쓴맛을 봐야 더 신중해진다. 아이가 부모가 사주는 것이라고 아무거나 사고 보자라는 게 아니라면. 


아이가 보는 책을 저평가 하는 건 아닐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아들은 마법천자문을 읽기 시작하면서, 재미있다며 나한테도 보라고 했다. (아들, 아빠도 재미있는 책은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권한단다.) 나는 왜 그렇게 권하는 아들에게 '고맙다'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좋은 것을 공유하려는 마음을 인정해주지 않고, "아니야, 아빠는 그런 만화 안 좋아해."라며 손사례 치기만 했을까? 재미있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이 있고, 많은 배움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책과 그렇지 못한 책이 있다. 하지만, 그 책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건 그 책을 읽는 사람이어야 가능하다. 아들이 읽는 책을 함께 읽지도 않으면서 섣불리 평가하는 어리석은 짓을 내가 했다. 


더 좋은 책을 권하고 싶은 생각을 늘 하지만, 책을 읽도록 두고 싶다면 내가 읽히고 싶은 책을 권해서는 안될 일이다. 베스트셀러에 올라도 몇 만부가 팔렸다고 해도, 나는 결국 내가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읽지 않았나. 부모님 아니라, 하느님이 읽으면 천당보내 준다고 말한다고 누군가에게 억지로 책을 읽힐 수가 있을까. 나는 아이의 선택을 믿지 못했고, 아이가 선택한 책을 저평가했다. 차라리 좀 덜 사게 하고 싶다면, 용돈을 주고 그 범위에서 사라고 하는 게 나으려나. 책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금전 관리의 관점에서. 아, 나도 책을 얼마나 사는지 관리가 안되어 참 면이 서지 않는구나. 


아무튼, 아들과 나눴던 대화에서 아들의 질문은 답은 그럭저럭 했지만, 그 질문은 내 머리 속에서 쉬이 빠져나가지 않았다. 아들, 물어봐줘서 고마워. 같이 책 많이 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