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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뒤늦게 녹음기를 샀나?

원글 작성 : 20160110 16:52(일)(광명->진주행 KTX안,수첩)

재작성 : 20160111 15:15(월)(집,에버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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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기 사진을 올리고 녹음을 통한 기록을 에버노트와 병합해보겠다고 썼다. 그 아래 달린 답글 중 하나가 “왜 녹음기를 따로 구입해서 사용하느냐”하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으로도 녹음이 잘 되는 데 말이다. 고민하고 녹음기를 샀으니 그에 대해 정리를 간략히 해보고자 한다.

Digital Convergence : 애타게 기다리던

한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휴대폰, CD플레이어 혹은 MP3플레이어, 녹음기, 네비게이션을 따로 가지고 다녔다. (네이게이션 사용을 위해 외장GPS수신기를 따로 연결해서 쓰기도) Palm 기기를 사용할 때도 모두 디지털 제품은 하나로 합쳐질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되기를 바랬다. 그리고 곧 Window 기반의 스마트폰이 나왔다. (아주 거대했지만 잘 가지고 다녔었다. 그때는 tombo 라는 앱에 메모를 했었구나) 휴대폰으로 txt파일로 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네비게이션도 사용하게 된다. 이제 기기는 하나만 들고 다니면 충분하게 되었다. (배불뚝이 대용량 배터리는 필수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성능은 10년전의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월등하다. 그리고 거의 모든 영역에서 다양한 앱들이 계발되어 있다. 다른 전자제품 없이 스마트폰만 있으면 미디어를 소비하는 것에서부터 왠만한 업무처리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블루투스 키보드라도 하나 있으면 노트북에 거의 견줄만 하다. 최근에는 오프라인, 온라인 구매시 휴대폰으로도 결재가 가능하니 지갑을 들고다닐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Digital Divergence : 일부러 선택하는 불편

나는 지금 전용기기를 가지고 있고, 최근에는 휴대용 녹음기를 샀다. 디지털 컨버젼스 제품 덕분에 우리는 외출 할 때 하나의 기기만 챙기면 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은 일종의 포털 사이트 역할을 하고 있다. 스마트폰 잠금해제를 하고 나서, 그 전에 하려던 일이 무엇이었는 지 잊거나, 먼저 처리해야 할 일들보다 더 먼저 확인해야할 일들(SNS 알림이나 게임, 뉴스)에 들르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기기로는 적어도 동일한 감각을 필요로 하는 작업에 있어서는 멀티태스킹을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동영상을 찍는 따위의 일을 할 사람은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은 하나의 감각을 위해 점유된다.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볼 수는 있겠지만, 책에 집중하는 순간은 음악은 들리지 않는다. 음악감상이 목적이라면 책을 함께 읽으면서 제대로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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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기 선택의 이유

  1. 녹음을 하면서 통화를 할 수 없다. 녹음하는 가운데, 전화가 오면 녹음은 중지된다. 전화를 받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녹음’이라는 활동이 방해받지 않으려면 전용기기가 필요하다.

  2. 녹음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 스마트폰은 여러가지 앱들과 알림메시지들의 전쟁터다. 녹음을 하기 전이나 하고 나서, 의미없는 ‘시간죽이기’에 돌입할 수 있다.

  3. 스텔스 모드. 녹음기는 녹음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이 꺼진다. 일종의 스텔스 모드. 녹음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녹음에 임할 수 있다. 내 녹음의 대상이 어린 아들과 딸이라서 이 부분도 중요하다.

  4. 녹음원본의 백업을 위해 반드시 파일을 리뷰해야 한다. 녹음 전용앱이나 에버노트앱의 녹음기능으로 여러차례 녹음을 해봤다. 그리고 다시 들어보면 일상의 소리들이 너무나 특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녹음하고 그걸 시간을 내어 리뷰한 적이 없다. 백업이 자동으로 되다 보니 녹음 메모를 다시 돌아보지 않게 되는 것. 녹음기는 리뷰를 강제한다. 필요없는 것들을 지워낼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다.

이북리더도 비슷한 맥락에서 유익하다. 아이패드 미니로도 책을 잘 읽었지만, 언제든 ‘다른 짓’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처럼 독서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훌륭한 도구가 아니다. 하지만, 이북리더로는 책을 읽다 지겨우면, 다른 책을 뒤적이게 된다. (물론 옆에 있는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면 실패.

에버노트에 저장한 녹음파일

기기를 여러개 가지고 다니면 충전이나 보관에 그만큼 어려움이 있다. 다행이 녹음기는 작아서 휴대하기가 좋다. 더 많은 녹음을 하고, 더 빠르게 녹음하기 위해서 당분간 녹음기를 목에 메고 다니기로 결정. 언제든 켜서 녹음한다. 내 주된 녹음의 대상은 아들이라, 아들과의 대화를 많이 기록한다. 늘 인터뷰 중이 요즘. 편한 것이 좋은 것이 아니듯 불편한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