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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006 수험생들에게 보내는 조언

2015-10-18 at 11.27.52

수험생들을 마주했다.

펜만 들면 글이 써질 것 같은 착각을 자주 하고 펜을 잡으면 쓸 말이 무엇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걸을 수 있으면 당장 나가 걸으면서 눈 앞에 꺼내두었던 생각꺼리를 다시 입 안에 넣고 걸으며 씹으며 생각을 펼치고 으게어 또 다른 생각들과 엮기라도 할텐데.

컴퓨터에 앉아서 키보드를 마주하기만 하면 A4 한장은 금새 진솔한 문장들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생각들을 쓸 것 같은 착각이 가끔 들 때가 있다. 그러고 컴퓨터에 앉아서 페이스북을 열면, 노티만 확인하고 손과 키보드를 할 일을 잊는다.

그.래.도. 키보드에 손을 얹고 있으면, 쓸 수 있는 것들이 생각난다.

오늘 내가 담임을 했던 학생들을 만났다. 정말 얼굴만 보려고 진주에서 김해까지 1시간 조금 넘는 시간을 운전해서 갔다. 아내에게 무려 두 아이를 맡기고. 어쩜 점심이라도 먹고, 또 어쩜 커피라도 한잔 하고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어쩜' 둘은 모두 성사되어 아이들과 밥도 먹었다. 잘 먹는 걸 보고 오니 애초 얼굴만 보겠다는 생각 속에 '뭐라도 주고 와야 겠다.' 는 생각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임용고사를 치르던 수험생 시절을 생각하더라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버려서 수험생은 어떤 기분이었나 또렷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헌데, 가만히 누워, 고3시절, 임용고시생 시절을 묶어 생각하니 제대말년 때와 뭔가 겹쳐지더라. '안 하던 짓 하지 않기'

징크스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꽤 리드미컬한 일상(routine)으로 짜여진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일상 때문에 권태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일상적인 것들에서 우리는 편안함을 많이 느낀다. 도전적인 일을 하는 사람에게, 창의적인 일들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일상이라는 것을 일탈의 대상이 되어야 겠지만, 차곡차곡 쌓아서 무언가 이루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일상은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매우 중요한 의식과 같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안 하던 짓 하지마. 괜히 체력관리 한다고 운동하러 돌아다니지 말고, 처음 먹어보는 건강보조식품 먹지 말고, 하여튼 안 하던 짓 하지마."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 제대말년 병장처럼 남은 25일은 아침밥-점심밥-저녁밥으로 이어지는 일상으로 25일을 하루처럼 비슷비슷하게 지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조언했다. 조언이랄만 한 건 아니지만, 조언하고 싶지 않고 그냥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날 시험을 제일 잘 칠거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공부를 얼마나 해왔건, 지금 얼마나 하고 있건. 수능날, 그날은 내가 친 어떤 시험보다 더 잘 칠거라고 생각해." 라고도 덧붙였다.

내가 그런 마음이었던 터라, 그냥 내 얘기를 해준 것. '수능 점수 잘 받게 해주세요.' 하는 기도는 당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기도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 - 실력껏 시험을 잘 치기 -에 기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너희들은 사랑받고 있다. 지금까지 쭈욱. 그리고 수능치고 나서도. 일류대 제자가 더 자랑스러운 게 아니고, 연봉높은 제자가 더 사랑스러울 것도 아니다. 네가 행복해 하면, 그래서 나도 좋고, 네가 기뻐하면, 그래서 나도 기쁘다. 우리는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