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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essional Development

세상을 편집하는 '나'

김정운 교수의 에디톨로지를 읽고.


학문
일정한 이론을 바탕으로 전문적으로 체계화된 지식인문 과학자연 과학사회 과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에디톨로지

저자
김정운 지음
출판사
21세기북스 | 2014-10-24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당신은 ‘변태’인가?그렇다면 창조적 인간이다! 모래밭에 나체의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김정운 교수는 책을 열면서, 자신이 최초로 가졌고, 그가 잘 알고 있던 것들이 그보다 더 유명하거나,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누구도 사용하지 않은 단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로 했다. 그 핵심 단어는 편집이고, 편집학이라는 말대신 에디톨로지라는 말을 사용하기로 했다. 학문의 정의는 일정한 이론을 바탕으로 전문적으로 체계화된 지식이다. 이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우선 에디톨로지의 학문적 성격에 대해 나는 확신하기 어렵다. 스스로 학문이라 칭한다고 학문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책을 읽고 다시 목차를 보니, 편집이라는 말이 워낙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어, 의미가 매우 모호해졌다. 

그의 책은 차라리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백과사전이나, 생각의 역사나 관점의 역사 이렇게 명명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그가 말하는 편집이라는 게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어떤 단어로 대체될 수 있는 지 생각해보고,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 지에 대해서 써보는 게 좋겠다. 

그는 18페이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지식을 구성하는 첫 번째 단계다. 그러나 이 첫 단계부터 선택적 지각이나 무주의 맹시와 같은 왜곡된 현상들이 이미 나타난다. 사안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소리다. 받아들인 자극은 정보를 구성하고, 그 정보는 서로 연합하여 지식으로 발전한다. 메타 지식과 지혜의 차원도 있다. 이는 내가 앞으로 설명하려는 에디톨로지의 주요 내용이다.

그리고 뒤 이어 20페이지에서는 
내가 이야기하고픈 에디톨로지는 인간의 구체적이며 주체적인 편집 행위에 관한 설명이다. 

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개개인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제각각이고, 그렇게 제각각인 방식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관점을 왜 받아들이는 지,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 지, 우리는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내리는 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운 교수가 자주 사용하는 것처럼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라는 표현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싶다. 이런저런 근거를 들어 어떤 현상에 대해서 설명하다가도 주관적인 의견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들어낸다. 이는 김정운 교수가 생각하는 편집의 주체와 관련이 되어 있다. 결국 가 중요한 것이다. 나의 중요성에 대해서 더 이야기 하기 전에, 목차에 사용된 편집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 지 생각해보자. 


- 편집 가능성이 있어야 좋은 지식이다. : 여기서의 편집가능성은 현실세계의 적용가능성, 혹은 실용성’에 가깝다. 유기체적 지식으로 고착화되어 어떤 변화의 가능성도 허락하지 않는 지식이 아닌 상태를 말한다. 
- 공간 편집에 따라 인간 심리는 달라진다. : 독일과 우리나라의 공간구성이 사람들의 심리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교실의 공간 구성(혹은 편집)을 바꿔야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하지만, 한 문명이 독특한 공간 구성을 갖게된 유례는 다시 그 사회의 지리적, 역사적 특성에 기인한다. 물론 김정운 교수가 그걸 몰라서 이렇게 쓴 것은 아닐 것이다. 공간 편집에서의 편집은 공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나 그룹이 의도적으로 변화를 주는 것. 편집이란 기획이나 구성이라고 봐야 한다. 
- 분류와 편집의 진화, 백화점과 편집숍 : 계층적인 백화점과 네트워크적인 편집숍을 예로 들고 있고, 그 둘은 상보적이는 의견을 피력한다. 여기서의 편집의 진화를 사실 누가 소비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하느냐 인데, 편집숍이 가지는 특징은 편집숍의 오너가 상품을 편집한 방식의 독특함을 고객이 향유할 수 있다는 점으로 들고 있다. 효과적인 판매를 위한 진열이 백화점의 방식이라면, 편집숍의 방식은 오너의 취향을 들어내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제목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분류와 편집은 거의 비슷한 단어로 쓰이고 있다. 결국 물건 분류법의 진화라고 써도 내용과 제목이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걸 확인할 수 있다. 
- 개인은 편집된 개념이다. : 개인, 사회, 문명화라는 단어가 사용되게된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생각하는 개인의 개념이 늘상 있었던 것(유일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이 부분은 편집 가능성에서 말하는 지식의 변화와 그 맥이 같다. 그리고 여기서 편집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변화와 함께 변화되어온 개념이다라고 봐도 된다. 
’는 내 기억이 편집된 결과다. : 여기서는 스티브 잡스와 빌게이츠의 연설을 비교하면서, 우리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낼 때 해당 내러티브가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편집이라는 것은 나라는 사람은 내가 가진 이야기에서 찾아낸 의미의 총합이라고 보면 되는 것. 기억이 편집된이라고 쓰면 마치 외부의 누군가가 나의 기억을 편집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기억을 편집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 천재는 태어나지 않는다. 편집될 뿐이다. : 여기서의 편집은 ‘사회적 선택’에 가깝다. 사회적 맥락에 적합한 사람이 천재 취급을 받는 다는 것이다. 
- 미국은 국가로 편집되는 국가다. : 미국은 유럽처럼 내세울 만한 역사가 없기 때문에 국가(anthem)를 이용해 국가의 정통성을 세우려고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여기서의 편집은 국가(anthem)로 정의되는, 정통성을 확보하는 이라고 봐도 좋다. 결국 사람들이 한 국가의 국민으로써 존재감이나 일체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히스토리가 없으니, 국가(anthem)을 그 도구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다. 


나는 김정운 교수가 에디톨로지라는 단어를 만들어 쓰지 않았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을 썼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단어는 우리의 호기심을 이끌어 낸다. (물론, Edit 과 logy/log는 익숙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마케팅에서 성공적이다. 그가 책머리에서 쓴 새로운 개념을 (적어도 나에게)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그의 책은 몇가지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 

1. 세상의 중심은 라는 것을 자신의 인생의 경험담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2.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통해, 그것들을 아우르는 새로운 통찰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독일학생들이 카드로 공부한다는 부분은 그런 점에서 재미있었고, 나도 해보고 싶다 생각했다. 카드 방식은 Scrivener를 떠오르게 했다.)
3. 재미있는 것을 행복하게 하면 된다. 이 책은 텍스트라기 보다는 오디오북같다. 동영상 강의를 텍스트로 구현했다니 그의 편집력에 감탄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 하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서 내가 공부하고 얻은 자료나 지식들을 재구성할 수 있다. 그것이 사회에 도움이 되면 더 좋겠고, 나에게만 도움이 되더라도 충분히 의미있다고 본다. 느끼고 깨달은 점이 알게된 것(깨알같은 지식들)보다 적은 듯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읽고 생각하고 쓰는 과정에 대해 새삼 강조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