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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아빠로살아가기

입덧과 아들




2014-11-27 at 17.12.50


입덧.
한 5년 전만 해도, 입덧은 티브이 드라마 속에서 여배우들이 좋지 않은 안색으로 시어머니 앞에서 '욱, 욱' 토할 듯 말 듯한 것이었다. 임신의 징후를 보여주는 것 이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곧 나에게 입덧은 생활로 다가왔다. 첫째를 입원했을 때, 아내의 입덧은 정말 심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아내도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지 못했다. 먹는 족족 토해냈고, 먹을 수 있는 것도 아이비 스낵, 얼음, 물 뿐이었다. 냄새 때문에 집에서 밥을 할 수 없었고, 냄새가 심한 음식을 조리할 수도 없었다. 나는 같이 굶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는 아내와 나만 돌보면 되니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힘들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때는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이제 아내는 둘째를 임신했고, 입덧이 시작되었다. 4주부터 16주 정도까지 입덧한다는 데, 아내는 일단 4주차가 되자 마자 입덧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매스꺼움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어릴 적 아주 버스를 오래 탔을 때를 생각해 보라, 그렇게 크지 않은 배를 탔던 때를 기억해 보면, 그 매스꺼움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시작된 매스꺼움은 조금씩 더 심해진다. 요즘 아내는 거의 일어나지 못하고, 밥은 한 번에 한 숟가락 정도만 먹는다. 그리고 딸기를 자주 먹고, 너무 신 과일은 먹지 못한다. 유분이 많은 음식은 토하면 냄새가 심해서 아이스크림도 먹지 못한다. 밥 냄새는 당연히 잘 맞지 못해서 임신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햇반을 가득 사뒀다. 다행히 아들은 햇반이 더 고소하고 좋단다. 그나마 아침에는 몸 상태가 좋은 편이지만, 저녁 시간이 되면 찡그린 표정으로 매스꺼움을 참는다. 이제 9주 정도 지났으니 앞으로 한 달이 좀 더 넘게 남았다.

그러니 아들은 나와 함께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좀 놀아주고, 밥을 준비하고. 다행히 아침에는 아내가 밥도 차려 먹고, 아들 어린이집 가방도 싸줄 때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 내가 아들 얼굴을 씻기고, 입을 옷을 챙기고,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다. 이 정도만 해도 힘들기는 하다. (하지만 이렇게 아들과 같이 출근하는 게 큰 기쁨이다. 이야기도 충분히 하고.)

오후가 되면, 아들을 데리러 간다. 아들과 뜨거운 재회를 하고, 집 근처를 좀 걷거나, 마트에 가거나, 집에 가자, 안 가겠다 실랑이를 좀 벌인다. 집으로 오면, 저녁을 바로 준비한다. 반찬이 있다면 아들이랑 좀 놀 수 있다. 반찬이 없다면, 아들 손만 씻기고 반찬을 해야 한다. 그렇게 저녁을 준비하고 나면 아들이 놀아달라 성화. 야구, 축구, 농구, 나는 악당 아들은 번개만, 씨름, 자동차 경주…. 등등. 그렇게 놀다가 저녁을 먹인다. 같이 안 먹으면 아빠 혼자 먹고, 너도 혼자 먹게 두겠다. 협박 아닌 협박을 해서 밥을 같이 먹는다. 그러면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온다. (반찬이라도 하는 날이면 왜 그렇게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건지…. 그렇다고 즉석 음식을 사면, 엄청난 쓰레기가. 물론 즉석은 몸에 좋지도 않으니) 그러면 아들을 씻겨야 한다. 10분 알람을 맞히고, 기다린다. 5분만 더 놀겠다는 아들 말에 다시 5분 알람 맞히고 기다린다. 씻으러 가서는 아들을 씻기고, 나는 대충 씻으면서 그 사이 아들은 놀게 둔다.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게, 아들 닦이고 로션 바르는 건데, 당최 가만히 이지 않았느니 참 힘들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지 않은 걸로 뭐라 하지 않는다. 아이가 너무 가만히 있으면 이상하지 않을까?)



그러면 잠시 시간이 있다. 이쯤 되면 아들은 그냥 엄마 옆에 있고 싶어 할 때가 많다.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 옆에 가서 엄마 사랑 좀 받는다. 그동안 나는 그냥 멍하니 앉아서 쉬거나, 책을 읽는다. 이때 읽는 책 멋이 꿀맛이다. 그리고 아들이 다시 나오면 놀기 시작한다. 이때에는 보통 야구를 한다. 던지고 치고, 아들이 홈런을 쳐야 끝난다. 홈런은 아들이 친 공이 내 머리를 넘어가는 것. 제발 홈런을 빨리 치면 좋겠지만, 자주 나오면 홈런이 아니잖은가. 그리고 시계가 8시를 넘으면 이제 양치질을 시킨다. 요즘에는 는 양치질도 온전히 혼자 하려고 한다. 혼자 전동칫솔(나는 평생 전동칫솔을 써본 적이 없는데, 아들이 아주 부럽다.)로 이를 닦는다. 혀도 닦고. 그럼 나는 헹굴 물을 주고, 10번 입을 헹구라고 한다. 아들은 5번만 헹구고 나서 10번 헹궜다고 이야기 한다. 이제 밤에 읽을 책을 고르기. 늘 10권씩 읽자고 하는 데,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9시라 늘 5권 정도만 읽고 잘 때가 많다. 책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에 좋아하는 책은 하 땅 자연관찰 시리즈 중, 버섯, 사마귀, 메뚜기, 거미에 대한 책. 그리고 '마르크스의 모험'이라는 책. 나도 아들 책을 읽으면서 공부가 된다. 마르크스의 모험이란 책은 첫 페이지 빼고는 글이 거의 없다. 그래서 더 할 얘기가 많다. 책 속에 나오는 사물의 이름도 대고, 무슨 이야기인지 묻기도 한다. 꼭 책이 글을 담고 있지 않아도 되는 거다. 그렇게 읽고 나서 이제 잠자리로.


전용 변기에서 쉬를 하고, 나랑 꼭 앉은 다음 자리에 눕는다. 요즘은 같이 이야기 지어내기도 한판 한다. 그리고 잠자리에 든다. 9시가 넘으면 나쁜 요정이 와서 눈을 뜨고, 안 자는 아이들 눈을 빼먹기 때문에 눈을 꼭 감고 있겠다. 이때 나는 휴대폰을 밝기 최소로 해두고, 페이스북을 하거나, 글을 읽거나 한다. 휴. 이렇게 휴대폰을 안 만지면 내가 먼저 잠드는 적도 많다. 아들은 한 두어 번 더 일어나서 물을 마신다. 그리고는 꼭 나한테는 왜 안 자느냐고 물어본다. 아들 지켜주려고 깨어 있는 거야 한다. 그렇게 잘 자고 나면 개운하다. 어젯밤에는 아들 옆에서 같이 잤다. 새벽에 내 코에 자기 얼굴을 대고 안아주는 데 아주 좋더라. 사랑해주는 것도 좋지만, 사랑받는 것도 좋다.


쓰고 나니, 아내의 입덧 때문에 내가 뭐가 힘든지 쓴 글이 아닌 것 같이 되어 버렸다. 몸은 좀 피곤해졌지만,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다. 그래서 행복하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