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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외면일기

파타고니아, 자본주의, 환경, 지속가능성, 소비자

파타고니아



돈을 주고 사면 된다. 

지구가 없으면 기업도 없다. 지구가 없으면 시장도 없다. 몇 해전 자주 들었던 ‘지속가능’한 이란 말이 이런 기업 가치에 어울리는 것 아닐까? 애초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라는 용어가 제시되면서부터 사회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지속가능한’이라는 단어를 남용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시장 속에서 나고 자랐다. 필요한 게 있으면 직접 만들기 보다는 돈을 구해서, 그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는 데 익숙한 것이다. 돈을 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누군가에게 우리의 시간과 노동력을 판다. 필요한 게 돈이기 때문에 보통 우리의 일이란 재미가 없다. 돈을 구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우리가 들이는 시간과 노동이 적을 수록, 같은 시간과 노동에 대해서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게 될수록 생산성(productivity)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지 골몰한다. Lifehacker니 Marshable이니 하는 미디어에서 빠지지 않고 자주 언급되는 주제가 Productivity 이다. 

내 손으로 내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의 어색함

얼마전 차량 에어컨 필터를 직접 갈려고 하니, 주변에서 그거 어렵지 않느냐 한다. 카센터 가면 한 2만원 받으니 좀 아깝긴 한데, 그렇다고 직접 하자니 좀 불안하다. 이런 반응이 많았다. 그리고 나는 필터를 직접 갈았다. (오일의 경우, 폐오일 처리도 있고 불편할 것 같지만, 필터는 가장 손쉽다고 알려진 DIY이니까) 그리고 후미등이 나갔다. 이건 카센터에 가면 가끔 공짜로 해주기도 한단다. 하지만, 일단 인터넷 쇼핑몰에서 후미등에 넣을 전구를 샀다. 차가 오래되어 자세한 DIY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일단 뜯어봤다. 조심스럽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후미등 교환. 실내세차도 차량용 청소리를 사서 하고 있다. 세 달전에는 전동이발기를 사서, 벌써 세번째 머리를 혼자 자르고 있다. 물론 이발기를 사기 전에도 보통 가위로만 머리를 자른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걸 이야기 하면 주변의 반응은 “몇 푼 아낀다고.”, “그걸 왜 직접 하나?” 인 경우가 많다. 내가 내 손으로 할 수 있지만,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과 내가 해보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돈을 아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내 주변의 일은 내가 처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차를 조금 손댔는 데, 내 차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더군요. 머리를 몇 번 잘라보니, 충분히 스스로 할 수 있을만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의 앞머리는 근 2년째 제가 잘라주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내가 스스로 할 수 있겠다 라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방법을 찾는다

이렇게 조금씩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환경을 파괴하는 방식이 아니길 바란다. 예전에는 내가 조금 아껴봐야 얼마나 많은 기름, 전기, 물을 아낄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알면서 행하지 않는 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본 취나드의 글을 보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이본 취나드는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만큼 사고, 아껴쓰라고 한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사람들이 사치품처럼 사기를 바라지는 않는단다. 더 많은 물건을 더 많은 이윤을 남기고 파는 게 기업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행태인데, 파타고니아는 그를 거부한다. 

우리는 쉽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사고, 수집한다. 인간이 언제부터 ‘수집’이라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는 지 모르겠지만, 이 취미는 자본주의 시대에 꽃을 피운 게 분명하다. 여러벌의 옷을 사고, 입지 않는 옷은 버려진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중고 물품을 사는 가게가 별로 없고, 사람들은 굳이 그런 제품들을 사려 하지 않는다. 나도 다를바 없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구매욕’을 느끼면, 갖가지 ‘필요’를 들어 욕심을 정당화 시킨다. 인터넷을 가면 모두 우리에게 제품을 서비스를 사라고 한다. 그런 광고가 없는 페이지가 어디 있나. 

사람들이 자주 쓰던 ‘지름신이 내렸다’, ‘뽐뿌가 온다.’ 표현들을 보자. 어떤 대상을 사고 싶다고 갈망하는 건 ‘나’이면서도 ‘아~, 이 물건 왠지 그냥 너무너무 사고 싶다.’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유행하는 ‘주어없는’ 혹은 ‘내가 주어가 아닌’ 문장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사고 싶다고 느끼면 그것을 인정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면 사지 않는 것. 그게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했다. 


필요한 것만 사는 것이 자본주의에 대항 하는 방법이 되는 이유가 또 있다. 

우리는 기업의 윤리성을 중시한다. 노동조합을 탄압하거나, 팔고 있는 물건의 원산지를 속였다거나 하면 공분해 마지 않는다. 깨끗하고 건강한 물건을 파는 게 기업이 지켜야할 도덕이고, 그것을 어기면 사람들은 불매운동을 하겠다거나 한다. 어떤 회사의 제품을 불매하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어떤 회사 전체를 불매하기란 어렵다. 대형마트A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비인간적인 처사를 했다고 치자. 이제 A마트 안 가겠다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집근처에 대형마트라고는 A마트 밖에 없다면? 다른 마트는 문을 다 닫은 주말이거나, 밤 늦은 시간 무엇인가 살 게 있는 데, 집 주변 작은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면? 우리는 타협하게 된다. 일본의 정치가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반대한다. 그에 저항하는 의미로 일본에서 난 제품을 안 산다? 중국 어선이 우리나라 해안을 침범하고 불법 어로 행위를 한다. 중국에서 수입된 생선은 안 먹겠다? 우리는 당장 소비의 규모를 줄이기도 힘들다. 그런데, 특정 제품을 절대 사지 않겠다라는 건, 그렇게 선언하는 순간 공허하게 된다. 지키지 못하는 약속이 된다는 말이다. 

필요한 것만 필요한 만큼 소비하면 된다. 마트에 가서 라면만 살 생각이었는 데, 참치도 집어 들고, 맥주도 집어 들었다. 라면은 6개 필요한 데, 12개 사면 맥주 한 캔을 공짜로 주길래, 이건 이득이 되는 거래라 생각하고 라면 12개를 사온다. 그런데 이건 우리가 이긴 게임이 아니다. 결국 마트는 우리가 더 많은 돈을 쓰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 예다. 장 볼 것을 정해서 마트에 갔더니 돈을 덜 쓰게 되더라. 어머님들이 했던 이야기가 맞다. 조금씩 사서 쓰는 게 더 이득이 된다. 아껴쓰는 데, 더 이득이 된다. 




파타고니아 제품을 많이 사고 싶다.


파타고니아의 경영 철학에 동감하면서, 파타고니아 제품을 보면서 많이 사서 쟁여 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이러니 하게 느껴진다.  파타고니아가 유기농 면을 사용하고,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데는 에너지가 들어간다. 유기농이 좋으니, 지금까지 사온 옷 들은 다 버리고 유기농 제품을 다시 사는 건 멍청하기도 하고, 반환경적이기도 하다. 아껴 쓰고, 덜 사야 한다. 이게 지속가능한 소비이며 현명하게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다.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되며, 지구에게도 유익하다는 말이다. 지구에 유익하면, 우리 아들이 살아가는 지구가 덜 더러워진다는 말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안전하게 조리된 음식을 먹이고, 깨끗한 장난감을 쥐어준다. 위험한 곳에 가지 못하게 하고, 더러운 것들을 치워준다. 아이에게 깨끗한 환경을 제공하고자 한다면, 지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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